누군가 내게 "당신 삶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이었느나?"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태풍 루사를 만나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된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2002년 서울을 떠나 삼척 산속에 들어온 지 4개월 만에 태풍 '루사'를 만났다. 나이 서른아홉에 전재산 2만원의 알거지가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삶의 갖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머리와 입이 아닌 몸으로 사는 법을 배웠고, 가슴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로부터 나는 2년 남짓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석축 노가다(막노동)와 건축 노가다를 하고 다녔다. 나는 그 과정에서 비로소 영성공동체 실현의 구체적 방법을 깨닥게 되었다. 오, 고마운 태풍이여! 참으로 신비한 주님의 섭리여!

2004년 5월부터 삼무곡 건축이 시작되었다. 한국 통나무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랑의 손길들이 모여 기적의 집짓기를 시작한 것이다. 한 해 동안 두 채의 통나무집이 지어졌다. 하나님께서 벌이시는 기적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내 가슴은 한없이 벅차 올랐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천사들의 발길에 감동과 경이로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구멍가게를 겸하고 있는 마을 이장댁에 음료를 사러 갔다가 술에 만취한 석축 노가다 동료 광길이 형님을 만났다. 그는 나와 스무살 터울이었지만 그의 요청에 따라 나는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건축을 진행하느라 자주 왕래할 수 없었기에 나는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눈앞에 불이 번쩍하며 안경이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었다.

"**놈! 니가 그렇게 잘났어? 오늘 니는 내한테 죽었다!"

이유도 모르는 일방적인 주먹질이 10여분간 이어졌다. 입술에 피가 터지고 눈두덩이가 부어올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순식간에 ㅇㄹ어난 사건이었다. 마을사람들 몇이 달려와 그를 붙잡은 덕분에 겨우 자리를 피할 수 있었지만 참으로 어이없고 억울했다. 말할 수 없는 모욕감에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날 밤, 나는 잠들 수가 없었다. 감정은 실타래를 헝크러놓은 듯 복잡했고, 억울함이 삭여짖 않아 심장이 벌렁거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너는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매일 그들을 폭행했다."

벼락처럼 들려오는 외마디 말씀이었다.

"제가 언제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까? 난 그들을 때린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오랜 기간을 소비한다. 넌 일 년에 집 두 채를 지으며 그들의 가슴에 못질을 했고, 예리한 톱날로 그들의 머릿속을 후벼팠다. 네가 당한 폭력은 네게 작은 상처를 만들었지만, 네가 가한 폭력은 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나는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잘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해주십시오."

"그들에게 빌어라. 대화해라. 네가 내 일을 하는 사람이듯, 그들 또한 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튿날 나는 날이 밝기 무섭게 광길이 형님 댁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죽을 죄를 졌노라고....내가 무지해서 그리 했노라고...."

동양의 한 스승은 '사랑'을 '깊은 이해'라고 표현하셨다. 그렇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께 잇닿아있으며 그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몸짓임을 알아차리는 통찰력, 이것이 바로 '깊은 이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출처: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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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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