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년...' 두 소녀는 마지막도 함께 했다.

이승에서 못다 한 우정, 하늘에서라도 이어가기를 부모들은 바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안산단원고교 학생 오모(17)양과 한모(17)양. 부모들은 딸들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침몰 사고 엿새째인 21일 끝내 주검이 돼 돌아왔다. 부모들은 숨이 턱 막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구조에 나섰던 잠수부는 두 시신이 한 객실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그제야 부모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자매처럼 단짝이었던 딸들 덕분에 양쪽 부모도 친분이 깊었다. 시험공부를 한다며 서로의 집에서 잘 때도 부모들은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한 달이면 몇번씩 두 가족이 모여 식사도 하며 지냈다.

2학년에 진학한 딸들은 9반과 1반으로 나뉘었지만, 항상 같이 다녔다. 수학여행도 함께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에도 한 객실에서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부모들은 목이 잠겼다. 딸들의 우정을 지켜주고 싶었다.

당국에 한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 고인들을 고대안산병원 장례식장에 나란히 모셨다. 빈소도 바로 옆에 차렸다.

26일 발인식은 고(故) 오양이 앞서 치러졌다. 고 오양을 실은 운구 행렬이 학교를 들러 수원연화장에 도착할 때쯤 고 한양이 뒤따랐다. 고 한양도 고 오양과 같이 학교를 거쳐 수원연화장으로 향했다.

부모들은 두 딸이 끝까지 함께 하기를 바랐다. 추모공원이 건립될 때까지 임시로 안치될 봉안당을 같은 곳으로 해 달라고 당국에 재차 요청했다.

하늘에서라도 우정을 이어가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을 관계 당국도 저버릴 수 없었다.

다른 희생자 때문에 애초 정해졌던 안산하늘공원으로의 안치는 어려웠다. 평택서호추모공원의 협조로 발인식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안치 장소를 바꿨다.

두 고인은 평택서호추모공원 OOO호실 13번째, 14번째 5단(층)에 나란히 모셔졌다. 유해가 담긴 유골함이 놓이고 문이 닫혔다.

부모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했다.

안산시청 관계자는 "딸들에게 이것밖에 해 줄게 없다는 두 아버지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며 "다른 희생자와 관계 시설에 협조를 구해 두 학생을 나란히 모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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