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김중수 총재가 2010년 4월 1일 취임 이후 3년 11개월의 행보 끝에 마지막 금통위 회의까지 왔다. 김 총재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마지막 회의를 주재한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은행 총재로서 보낸 기간에 대해 "임기 4년을 하루하루 참 치열하게 보냈다"고 표현했다. "격변의 시대였고, 질풍과 노도의 시대였다"고 명명했다. 소통 능력 부재를 탓하는 목소리엔 "전달이 잘 안됐다면 둘 다에 책임이 있는 것"이라면서 "논쟁의 과정을 반복해 우리 경제가 (높은)그런 수준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중수 총재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로 활동하다가 한은 총재를 맡았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물가안정보다 성장을 지향하는 '비둘기파'로 인식돼 왔다. 당시 경제 성장률이 6.3%에 달했고 전임 이성태 총재가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2.0%의 낮은 금리로 유동성을 과도하게 풀어 물가 불안마저 우려됐던 시기다. 이성태 전 총재는 퇴임 전 "금융완화기조는 적당한 시기에 줄이는 쪽"이라며 금리인상 가능성을 보였지만 김 총재가 취임하고서도 석 달간 기준금리는 계속 동결됐다. 당시 국회의원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내고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금융시장의 혼란과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고 비판했고 "환율 방어를 위해 물가 불안을 외면한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경제 부처와 여당은 추경예산을 추진, '정책 조합'을 강조하고 당시 2.75%였던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김 총재는 3개월 지난 5월에야 금리를 2.5%로 내렸다.

김 총재의 4년에 대해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통화정책에서는 "시장 소통에서는 약간의 충돌이 있지만 금리정책은 나름대로 잘 해왔다"는 평가와 "필요 이상으로 지적을 많이 받았지만 '대과'는 없었다"는 비판이 있다. 해결사는 아니어도 실수는 없었던 만큼 '중간 이상'은 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에 있어 앞길을 제시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비판은 크다.

김중수 총재의 4년간 한국은행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김 총재는 "빛과 그림자 중 빛이 더 컸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재임 기간 한은의 주요 변화로 '금융안정의 역할'을 추가한 한국은행법 개정, 직군제로 대표되는 인사개혁 등을 꼽았다.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국제무대에서 한국은행의 위상을 높인 점도 그의 공으로 평가된다. 한은에서 국제기구와 주요국 중앙은행에 파견된 직원은 2009년 말 5명에서 지난해 말에는 13명으로 증가했다. 국내외 연구진의 공동연구도 2010년 1회에서 지난해 65회로 부쩍 늘었다. 대체로 대규모 국제회의에서는 일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발언권을 독차지하지만 김 총재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국제감각으로 한은의 존재감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게 한은 안팎의 평가다. 또한 인사에 있어 연공서열을 파괴하는 모습도 보였다. 소통에 있어서도 금융통화위원회 개최후 의사록이 공개되는 시기를 기존 6주에서 2주로 단축했고 분야별 전문가와 간담회와 시장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임기 중 소회를 밝히며 밝게 웃고 있다. 김 총재는 이날 임기중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가졌다   ©뉴시스

하지만 직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2011년에는 한국은행 노조가 김중수 총재 취임이후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연공서열 파괴하는 인사 또한 직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실제로 차기 총재후보인 이주열 전 부총재는 2012년 퇴임식에서 "60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낀 사람이 많아졌다"고 언급했다. 당시 반발에 대해 김총재는 "일부 반론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만, 모두 당연히 직면해야 하는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경쟁력을 높일 때 대내 경쟁을 먼저 해 경쟁력을 키우거나, 대외 경쟁을 먼저 해 역량을 키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전자는 인류 역사에서 성공한 일이 없었다"고 말하며 한은의 도약을 위해선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작업이 불가피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 번의 여유나 편안함도 갖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총재는 퇴임 후 계획에 대해 "가을 학기부터는 강의하면서 그동안 했던 일을 잘 정리할까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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