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가격이 일 년 새 30% 가까이 떨어지면서 골드바 매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값이 많이 떨어진 탓에 금 매입 의사를 타진하는 거액 자산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금 금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닌데다 주식 투자 수익률도 신통치 않은 탓에 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이 세(稅)테크가 가능한 투자 대상이라는 것도 강점이다.
부가세와 수수료 15%를 제외하곤 매매차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아 상속 및 증여에 유리하기 때문에 슈퍼리치(super-rich)의 선호 자산이다.
올 7월 '해외금융계좌 납세순응법(FATCA, 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시행에 앞서 누락된 재산을 금융자산이 아닌 금으로 돌리려는 이중국적자들의 수요도 늘고 있다.
◇금값, 일 년 사이에 30%나 추락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7일 현재 순금 3.75g(1돈)은 16만9000원(매입가 기준)에 거래되고 있다. 23만원을 호가하던 지난해 2월에 비해 약 27%나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금값은 화폐 가치가 떨어질 때 치솟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이 양적완화정책을 펴 통화량이 많아지자 화폐의 가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금으로 눈을 돌렸다.
금융위기 발생 이전인 2008년 3월 12만원대에 머물던 금 거래값은 2009년 7월 15만원대, 2010년 1월 17만원대, 2010년 12월 21만원대, 2011년 9월 26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방침이 가시화되면서 달러화 강세가 나타나자 금값은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값의 하락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자산가들, 매입 시기 저울질
골드바를 판매 중인 신한·우리·KB국민은행은 골드바 판매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골드뱅킹 실적은 금값 하락에도 증가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금 실물의 직접적인 거래 없이 은행이 대신 금을 매입해 수익을 추구하는 신한은행의 '골드리슈' 상품의 경우 지난해 1월 말 기준 8678㎏이던 금 투자 규모가 12월 9773㎏로 증가했다.
떨어지는 금값을 주시하던 자산가들은 금값이 바닥을 칠 날을 기다리며 본격적인 매입 시점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더 이상 큰 폭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고 어차피 금에 투자하는 자산가들은 단기 차익보다는 장기 보유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크게 손해볼 일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골드바를 판매하는 한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 관계자는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정 목표치를 잡아놓고 이 기준까지 금값이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금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 다른 투자수단과 달리 15%의 부가세와 수수료만 내면 되기 때문에 절세 효과가 크다. 재산 등록 절차도 없어 증여와 상속 등을 이유로 장기 보유하는 자산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7월 시행 앞둔 FATCA도 금 매입 부채질에 한 몫
금융권에 따르면 올 7월부터 미국에서 시행되는 '해외금융계좌 납세순응법(FATCA)도 자산가들이 금에 관심갖게 하는 원인이다.
이는 한국과 미국 국세청이 상대방 국가의 금융기관에 있는 자국민의 금융계좌 정보를 공유하는 제도다. 예치 금액 5만 달러(약 5300만원)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실제보다 적게 신고하는 경우 30% 상당의 세금이 원천징수된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해도 국적포기세가 과세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산가들이 최근 금융자산 대신 금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양국의 정보 교류가 금융자산이 아닌 다른 형태의 자산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슈퍼리치들은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6월30일까지 계좌를 정리해야 하는데 남은 자금을 유동성이 높은 금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문의가 상당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