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목사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
발표를 맡은 김성호 박사는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한 신학자이자 콜린 데이비스의 『타자를 향한 욕망-레비나스 입문』 등 레비나스(1905~1995)에 관한 번역서를 다수 저술한 레비나스 연구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발표에서 레비나스와 장공이 타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레비나스 철학의 주제 중 하나는 존재론을 가장 근본적인 철학 영역으로 간주하는 전통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이 존재론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전체성(totality)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고, 이 전체성 안에서 ‘타자’(other)는 필연적으로 ‘동일성’(identity)으로 환원된다고 보았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존재론이 전체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존재론보다 윤리학이 철학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윤리학은 존재론과 달리 인간 상호 간의 모든 실질적 관계를 포괄하는 영역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 철학에는 타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왔다고 주장하면서, 타자 및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이해를 장공 김재준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김성호는 주장했다. 그는 타자로서의 ‘성서’를 주목하면서, 장공이 ‘성서’라는 타자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살폈다.
이를 위해 먼저 장공의 하느님 이해를 살폈다. 장공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절대 타자’였다. 장공은 그의 글 『내가 믿는 하느님』에서 “(하느님은) 절대 타자다. 그러므로 그의 존재는 인간의 추리에서 발견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자기계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객체화할 수 없는 절대주격으로서의 하느님이었던 것이다.
또 장공은 인간 역시 절대주격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느님의 절대주격을 수용하면서도 하느님 편에서의 인간에 대한 사격화(斜格化) 하는 것을 피했으며,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객체-주체가 아닌 주체-주체의 관계로 보았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길 “신은 절대주격자입니다 … 인간도 절대주격적 존재자입니다. 물건과 같이 객관화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장공을 공격했던 소위 정통주의자들은 하느님 편에서 인간을 사물화하고 기계화했다. 그들이 주장한 축자영감설에서 영감에 대한 이해는 “하느님이 최대한으로 활동하고 사람은 최소한으로 활동하는 경우에 영감이 더 커진다고 믿는” 것이다. 장공은 이를 비판하며 말하기를, “(그것이 온전한 영감이라면) 그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주 기계처럼 되어서 자기의식까지 잃어버리고 접신하였다는 무당같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은 사람을 결코 기계처럼 다루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자기를 계시하실 때에는 그 받을 사람에게 영감으로 일하시되, 결코 그의 인격을 억압하거나 무의식상태로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더욱 앙양하고 순결하게 하여 어디까지나 자기로서의 인격적 반응이 철저하게 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장공의 하느님 이해는 장공이 ‘성서’라는 타자를 이해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장공에 따르면 성경의 기자들은 “개성과 특이성을 지니고 있는 자이므로 그 자신의 지식과 특성과 그 처해 있는 환경과 시대색 등이 그를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반영”된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 자체는 절대무오”하지만 그 말씀을 “표현하는 양식과 그 표현에 사용된 소재 등은 사람과 시대를 따라 다양성”을 가진다.
또 정통주의자들이 하느님의 영감을 빌미로 성서나 성서해석을 절대화함으로써 성서라는 ‘타자’에 대한 물음과 탐구 자체를 차단한 것과 달리, 장공은 구도자적인 심정을 가지고 성서를 마주했다. 그 결과, 정통주의자들은 타자에 대한 진정한 탐구 없이 자기로 귀환하는 게으름과 권태로움, 권위주의와 폭력, 사회·역사·자연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환한 반면, 장공은 타자로부터의 영향 아래 또 다른 타자들-이웃, 사회, 역사, 자연, 우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나갈 수 있었다.
김성호는 “성서가 영감 받아 쓰였다는 특권적 지위는 우리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서 텍스트를 우상숭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가 영감 받아 쓰여졌기 때문에 책 중의 책인 성서가 주석과 주석의 주석을 허용하는 데 있다”며 꾸준한 비평을 통한 성서읽기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