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우리 역사의 가장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한 장면을 보여 주며, 이 곳에서 숨져간 이들의 운명이 내게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3만여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학살된 독일 뮌헨 인근의 다하우(Dachau) 수용소.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가두었던 그 차가운 벽 앞에서 지난 20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적 과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연설을 전했다.
BBC에 따르면 같은 기간 운영된 타 수용소들에 비해 잘 보존되어 있어 나치의 만행을 생생히 증언하는 다하우 수용소는 독일 정치인들, 특히 우파 정치인들이 방문을 기피해 온 곳이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는 그러나 이 날 독일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 연설하며, 과거를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총리는 "독일 국민들이 어떻게 해서 인종과 종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의 생존의 권리를 빼앗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었는가"라며, "당시 거의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눈을 감았다"고 반성했다.
그는 "이 곳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며, "부디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자"고 말했다.
또한 "나는 이 곳에 과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를 짓기 위해 왔다"고 밝히며, 올바른 역사적 인식 위에 독일의 미래도 있음을 시사했다.
더 텔레그래프는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연설이 나치 대학살 생존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날 메르켈 총리의 옆을 휠체어를 탄 채 지킨 다하우 수용소 생존자 협회의 대표 막스 만하이머는 "이번 방문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위한 존경의 표시이자, 역사적 사건"이라고 밝혔다. 뮌헨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인 샬럿 노블로크 역시 "메르켈 총리의 이번 방문은 타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이라고 전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메르켈 총리가 이번 다하우 수용소 방문을 극단주의적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유럽에 경고를 보내는 기회로 삼았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행보는 비단 독일과 유럽의 정치인들뿐 아니라 동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기에 바쁜 일본 극우주의 정치인들에게도 말하는 바가 크다. 나치 수용소 앞에서 부끄러워 하며 반성하는 독일 총리의 모습과,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며 예물을 바치는 일본 총리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