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경북 산불 사태를 계기로, 현재의 산불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산불은 '컨트롤타워' 부재를 비롯해 구조적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반복되는 대형 산불에 기존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산불 확산과 피해 규모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28일에 이르러서야 대부분 진화됐으며, 총 149시간에 걸쳐 불길이 이어졌다. 반면, 같은 시기 경남 산청과 하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아직 완전 진화되지 않은 상태로, 정부는 주말까지 인력과 자원을 계속 투입해 잔불 진화와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는 인명과 산림, 시설 등 전방위적으로 발생했다. 30일 기준, 사망자 30명을 포함한 총 인명 피해는 75명으로 집계됐다. 산불로 영향을 받은 면적은 무려 4만8,238헥타르에 달하며, 이는 축구장 약 4만8천 개에 해당하는 규모이자 여의도의 166배에 이른다. 시설 피해는 총 5,098건으로, 이 중 4,998건이 경북 지역에 집중됐다.
◈지휘 체계의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산불 대응을 총괄하는 지휘 체계, 즉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꼽는다. 현재 산불 예방과 진화는 산림청이 주관하고, 소방청은 이를 지원하는 구조다. 하지만 불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 작전 능력 면에서 산림청은 소방청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산불은 골든타임 내 초기 대응이 관건인데, 산림청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며 "불의 특성과 확산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소방청으로 지휘권을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불은 넓은 작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만큼, 신속한 판단과 현장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04년 소방방재청이 신설될 당시부터 산불 대응 권한을 소방청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산림청이 계속 이를 관장해왔다. 대형 산불이 발생하거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련 논의가 재점화됐지만, 정책적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응 인력의 고령화
진화 인력 구성의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산림청 소속 산불 진화대는 약 1만 명에 달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65세 이상의 고령자다. 대부분은 지자체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단기 채용된 일용직 근로자로,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의 초동 진화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 경남 산청 산불에서 진화 작업 중 사망한 대원 3명 모두 60대였다.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은 "고령화된 진화대원으로는 초기 대응이 어렵다"며 "훈련된 소방청 대원과 같은 전문 인력이 산불 진화에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후한 진화 장비
장비 부족 역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산림청이 보유한 50대의 헬기 중 대형 헬기(담수 용량 8,000ℓ 이상)는 단 7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5,000ℓ 미만의 중형 32대, 1,000ℓ 미만의 소형 11대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소형 헬기 중심의 진화 체계는 대형 산불에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헬기는 20~30년 이상 사용된 노후 기종이다.
채 교수는 "산불은 헬기 없이는 진화가 어렵고, 지상과 연계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며 "노후화된 소형 헬기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지상 진화 장비의 중요성
반면 대형 헬기의 도입이 반드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황 소장은 "대형 헬기의 효과는 인정하지만 예산 부담이 크다"며 "2022년 울진 산불 당시 전국의 헬기를 동원했어도 진화가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산불특수진화차 같은 지상 장비 확충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도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기후 변화로 대형 산불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대응 체계가 충분한지 점검이 필요하다"며 "모든 유관 기관은 신속히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전문가들과 정부 모두, 현행 산불 대응 체계가 반복되는 대형 산불에 적절하지 않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제는 실효성 있는 체계 개편을 통해 산불 대응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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