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 5당이 지난 2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등이 추진한 30번째 탄핵소추안이다.
민주당 등 야 5당이 최 권한 대행을 탄핵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데 있다. 또 야당이 국회에서 처리한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 임명을 의뢰하지 않은 것, 내란 공범 혐의도 탄핵 소추 사유에 포함했다. 탄핵소추안은 제출 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 보고된 후 가결 절차를 밟게 되는데 27일로 예정된 본 회의를 앞당겨 처리하려 할지 지켜볼 일이다.
최 권한대행이 마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민주당은 직무유기이자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는 직무 유기도, 처벌 대상도 아닌 최 권한대행의 정당한 권한 행사로 판단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에 헌법재판소가 낸 선고를 보면 알 수 있다. 헌재는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를 임명할 의무가 있다’라고 하면서도 마 후보를 재판관으로 직접 임명해 달라는 청구는 각하했다. 최 권한대행이 재판관 후보를 임명할 의무가 있으나 그 시기에 대해선 권한대행이 판단할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최 권한대행을 “직무 유기 현행범”이라며 “경찰이든 국민이든 누구나 즉시 체포할 수 있다. 몸조심하라”고 했다. 공당의 대표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인 협박이다.
이 대표의 협박성 발언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 심판이 늦어지고 있는데 따른 초조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헌재가 8대0으로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는데 시간이 갈수록 탄핵에 찬성하는 헌법재판관 숫자가 6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 심리가 원인이다. 그래서 탄핵 찬성표를 던질 게 확실시되는 마 후보를 어떻게 해서든 헌재에 집어넣어 판세를 뒤집으려고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헌재는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를 임명하지 않는 것을 국회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면서도 임명을 강제하지 않은 건 권한대행의 정당한 권한 행사로 인정했다. 그러니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해도 헌재에 가서 각하, 또는 기각될 게 뻔하다.
정치적 무리수를 선택한 민주당으로선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아 보인다. 내란을 조기에 종식해 국정 운영을 정상화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민주당이 또다시 습관성 줄 탄핵을 재개했으니 명분도 실리도 잃고 국민적 원성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꿈꾸는 이 대표의 극렬 지지층은 박수를 치겠지만 국민 의식 저변에 거부감이 한층 커지는 역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기류를 민주당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당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같은 이가 직접 나서 질타한 것만 봐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김 전 국무총리는 야 5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직후인 지난 21일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익은 적고,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게 된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각료들에 대한 탄핵이 분풀이 수단이 될 순 없다. ‘몸조심하라’는 부적절한 발언에 뒤이은 무리한 탄핵 추진은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할 수 있음을 깊이 유념하라”고 지적했다.
최 권한대행에 대한 야당의 탄핵 소추안 발의는 이런 부정적인 기류도 기류지만 마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민주당이 엄포를 놓은 지 3개월이 지나 발의했다는 점에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 보복의 의도가 있지 않은 이상 김빠진 ‘뒷북’을 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권한 대행까지 무려 29번이나 탄핵을 남발함으로써 윤 정부가 아닌 거대 야당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초래한 주범이란 국민적 비판에 휩싸였다. 그걸 의식해 한동안 잠잠히 있는 듯 하다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또다시 탄핵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여론에도 이런 식상한 카드를 다시 꺼내 든 데는 “국민 누구라도 체포할 수 있다”며 최 권한 대행을 겁박한 이 대표의 분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조기 대선이 물 건너가게 되고 대신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크게 부각되는 상황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리수를 두더라도 이 대표 앞날에 방해되는 건 모조리 치우겠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민주당이 발의한 30건의 탄핵소추안 중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로 통과시킨 게 모두 13건이다. 그 중 헌재에서 심판해 결과가 나온 8건 모두 기각됐다. 탄핵이 기각된 사람 8명 중에 6명이 ‘만장일치’ 기각이었다는 건 재판관의 성향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탄핵 사유가 아니었다는 걸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탄핵의 궁극적인 목적이 직무 정지, 더 나아가 국정 마비를 시키려는 것 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헌법 질서를 해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을 때 쓰라고 국회에 탄핵소추 권한을 준 건데 전혀 다른 목적으로 남용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다.
한 정부에서 무려 30건의 탄핵 소추가 발의된 건 세계 헌정사에서 대한민국 야당이 유일무이하다. 이걸 어찌 정당한 균형과 견제라고 할 수 있겠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전 세계가 무역전쟁을 치르는 마당에 리더십의 부재만으로도 넘치는 파고를 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도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온 나라를 수렁에서 빠뜨리고 있으니 그 책임을 누가 질 건가. 이런 저급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만용에 대해 반드시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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