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8살 어린이가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가해 교사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의료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정보와 편견이 우울증 환자의 치료 기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우울증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정신과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 부족과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강하다. 특히 이번 사건의 수사 초기부터 가해자의 특정 질환명이 거론되면서, 우울증 환자들이 낙인을 두려워하고 치료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죄인이 된 기분이다'라고 토로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수사 단계에서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야 하는 시점에서 특정 진단명이 부각되면서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 환자들이 불안해하며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수 있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울증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이 가능한 질환이다. 하지만 낙인 효과로 인해 치료를 주저하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치료율이 현저히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 자체가 아니라 피의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우울증이 원인이라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논리는 우울증 환자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차별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치료를 방해해 정신건강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비극이 우울증을 앓는 교사들이 이를 숨기고 치료받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며 "'하늘이법'은 교사들이 불이익 없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로 설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우울증 환자 중 고작 10%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치료율이 50~60%, 미국이 60%를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신 건강 문제를 터부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하며, 환자들이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한국기자협회,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지난해 11월 마련한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에도 정신질환 낙인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돼 있다. 해당 기준에는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의 정신질환 병력이 확인되더라도 사건의 원인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암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정신질환이 사건과 연관됐다고 하더라도 범죄의 유일한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언론이 사건을 보도할 때 가해자의 정신질환을 강조하는 방식이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치료 기피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특정 질환명을 강조하는 것이 정신질환과 범죄를 무조건적으로 연결짓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백 교수는 "정신질환을 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며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과 편견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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