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세워지게 됐다.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은 지난 13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부지에 이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공식 의결했다.
이 대통령 기념관 건립 부지로 최종 낙점된 곳은 현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 공터. 재단 측은 이곳이 한미동맹을 체결하고 대한민국 번영의 초석을 닦은 이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데 있어 그 상징성을 높이 평가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용산가족공원 등과 인접해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장점이 있다.
재단 측이 이 대통령 기념관 건립 부지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으로 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복궁 동쪽에 있는 열린 송현문화공원(송현공원) 부지를 가장 유력했던 후보지로 검토해 왔으나 뜻하지 않은 갈등으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송현공원은 서울광장의 약 3배에 달하는 녹지공간이다. 해방 후 50년간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던 이곳은 이 전 대통령 사저인 이화장과도 거리상 가깝다. 재단으로선 서울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경복궁 바로 옆의 광활한 녹지공원을 일찌감치 제1 후보지로 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불교계가 적극적인 반대에 나섰다. 이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54년 대처승 등을 사찰에서 퇴출하라고 요구한 이른바 ‘정화유시’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원인이다. 송현광장 인근에 태고종 총무원이 위치하고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계사가 있는 점이 불교계의 감정을 건드린 측면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부지로 유력했던 송현광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교계의 반대가 있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최근 YTN 라디오 전화 인터뷰에서 “바로 옆에 태고종 본산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태고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인식 때문에 거부감이 상당히 컸다”고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송현광장 부지가 불교계의 반대로 무산된 건 재단이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복궁 바로 옆에 왕정 시대를 끝내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이 나란히 세워지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그만한 위치도 따로 없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반대에 부딪쳐 재단 측이 유력 후보지를 변경하게 된 건 아쉽지만 새로운 부지로 선정한 용산 부지가 송현공원 못지않은 역사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곳이란 점에서 매우 잘한 선택임에 틀림없다.
이 전 대통령은 조선 왕조 말에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배제고에 입학해 선교사로부터 기독교교육을 받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꿈꿨다. 일제 강점기에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8.15 해방 후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 속에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출범시킨 선각자였다. 6.25 전쟁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번영의 기틀을 다진 업적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서울 용산 일대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군이 주둔하던 병영이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1949년까지 미 보병 7사단이 잠시 머물렀던 이곳에 미8군 사령부가 주둔하게 된 건 6·25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이관되면서부터다. 그런 점에서 용산은 한미 군사동맹의 거점이자 이승만 정신의 상징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기념관 건립 부지 선정을 마무리한 재단은 올 하반기 중 기념관 건축 설계 공모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기념관을 완공 개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걸리는 문제는 아직까지 저조한 모금액 실적이다.
지난해 9월 발족한 재단은 전 국민 모금액 목표를 320억 원으로 정했다. 그동안 약 11개월 동안 각계각층의 시민 7만8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으나 실제 걷힌 모금액은 132억 원으로 아직 목표액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액 정부 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단 측이 국민 참여 모금운동으로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념관 명칭에 있다. 정부가 100% 주도하는 기념관은 ‘대통령’이란 직함을 넣을 수 없는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보수 진보 인사들이 총 망라되고 국민적 관심도 높지만 야당과 일부 독립유공자 후손 단체가 이 대통령에 대한 폄훼와 왜곡을 일삼고 있는 건 여전히 걸림돌이다. 지난 8.15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한 광복회와 야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부르는 자체를 ‘친일파’ ‘뉴 라이트’로 규정해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첫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을 1919년으로 보든, 1948년으로 보든 ‘건국 대통령’은 이승만 한 사람 뿐인데 이걸 부정하면 역사의 진실을 논할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부르는 건 일방적인 추앙의 의미가 아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게 첫째다. 그 분의 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불행했던 시대에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功)은 공대로, 권력의 어두운 과(過)는 과대로 진실 그대로를 알려줌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불행했던 역사를 반추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깨우는 데 목적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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