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1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미국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한 빈자리를 해리스 현 부통령이 빠르게 메우면서 트럼프와 해리스 양자 구도로 굳어지는 양상이나 현직 대통령이 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미 대선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 토론에서 완패한 후 당 안팎에서 후보 사퇴 요구 압박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도중 벌어진 총격 사건 이후 지지세가 더 떨어진 게 사퇴를 결단하게 만든 요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격 사건 이후 대선 주자로서 더 확실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고령에 인지능력 저하라는 불리한 이미지에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중요한 시기에 유세 일정의 중단이라는 등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선 후보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당 안팎의 거센 압박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퇴 성명에서 “당과 나라를 위해서는 내가 도전을 포기하고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라고 밝힌 후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공식 지지를 표명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AP통신 자체 조사 결과 민주당 대의원 가운데 최소 2668명의 지지를 얻어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수를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당내 유력 인사들이 잇따라 ‘해리스 지지’를 밝히면서 이미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자리를 굳힌 모습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 사퇴라는 변수를 빠르게 지워나가면서 앞으로 큰 이변이 없는 한 미국 대선은 트럼프와 해리스 간의 양자 구도로 굳어지게 됐다. 다만 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경선까지 치른 후보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향후 대선 정국에서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바이든 대통령의 차기 대선 후보직 사퇴는 미 정치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큰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우리 정부는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와 외교 안보 분야에서 긴밀한 공조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점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먼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의 대체자인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민주당의 한반도 정책을 견지해온 만큼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과의 차별화를 내세워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간의 흔적을 지우려 든다면 우리 안보·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낙태와 젠더·성 소수자 문제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더욱 보수적인 대응이 예상된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시 임명한 3명의 연방대법관들에 의해 반세기 만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여성들의 임신 6개월 이전 자유로운 낙태를 법으로 금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낙태 규정은 주 정부 및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가 보수성향 지역에서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입법이 잇따랐다.
문제는 한반도 안보 리스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과거 북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김정은이 나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을 가지고 장난치는 김정은을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만 미국 대선주자로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건 적절하다 할 수 없다.
여기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J.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17일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더 이상 무임승차는 없을 것”이라며 동맹국과의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했다. 트럼프 진영에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에도 본인이 김정은과 두 차례 회담을 가진 것을 자랑스러운 외교 업적으로 내세우곤 했다. 대통령에 재선되면 이런 ‘쇼맨십’을 김정은이 어떻게든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안보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의 윤석열 정부와 이전 문재인 정부는 대북관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문 정부는 북한 김정은의 대리자 역할을 자임하며 트럼프 측을 끌어들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과거와 같은 ‘미·북 쇼’가 재연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북 인권 문제는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외면할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공히 심각하게 인식하는 문제를 미국이 도외시할 순 없을 것이다.
한반도 안보 문제를 미국 등 강대국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다. 트럼프 측이 방위비를 올려달라면 올려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면 된다. 주한 미군 철수는 미국의 안보와 이익에도 직결되는 문제라 함부로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 정부가 북핵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 우리도 핵 보유 압박 카드를 쓸 필요가 있다.
미 대선이 100여 일 남은 시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트럼프 대세론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다만 우리나라로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다각도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한미동맹과 공조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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