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최후 만찬의 일시: 유월절 축제 전날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나사렛 예수는 다가오는 십자가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제자들과 작별의 최후 만찬(晩餐)을 하신다. 유월절 절기가 최후의 만찬의 배경이다. 최후의 만찬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모두가 이를 기록하고 있다는 데서 확인될 수 있다. 마가는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막 14:16). 마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시는대로 하여 유월절을 비하였더라”(마 26:18-19). 누가는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5).

이에 반하여 요한은 고별식사에 관하여 특별한 보고를 하지 않는다. 이 관하여 요한은 가롯 유다의 배신과 관련하여 떡 한 조각을 주시는 것에 관하여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26-30).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고별 식사는 유월절 축제 전날(목요일 밤) 유대인들의 유월절 식사의 틀 속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의하면 이 시점(금요일 밤)에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예수는 이 날(유월절 에비일) 오전 일찍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 때는 성전에서 유월절 식사를 위하여 양들을 도살하던 바로 그 시점이다(요 18:28; 요 19:14-16). 날자와 시간에 관하여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사실에 관하여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어느 보고가 더 정확한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 논란적이다.

저자는 역사적 예수의 최후만찬에 관하여 네 복음서 저자들이 한결같이 전하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 실재주의(biblical realism) 관점에서 역사적 진정성(authenticity)을 그대로 인정하고자 한다. 바울신학에 대한 새 관점의 복음주의 신약학자 톰 라이트(N. T. Wright)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최후만찬을 했다고 그 역사성을 인정한다. 그는 예수가 행하신 다른 전복적인 관습들(subversive practices)과 같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날에 유월절 식사를 한 것이라고 논의한다. 이 문제의 해결에 관하여는 미국 노트르담대 신약학 교수요 천주교 신부인 마이어(John P. Meier)는 요한복음의 전승을 지지하면서 공관복음이하는 전통도 허용하면서 신학적으로도 동의될 수 있다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라칭거도 동의하고 있다. 저자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연대기를 종합하는 조베르의 제안을 수용하고 슐라터와 마이어의 신학적 해석에 동의하면서 종합적인 이해를 하고자 한다.

1. 공관복음의 의도: 성만찬은 새로운 언약으로서 유월절 식사 - 목요일 최후만찬, 금요일 심문 처형

누가와 마태가 자료로 의존하는 마가는 최후만찬의 정확한 날자를 제시한다: “무교절의 첫 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다 앉아 먹을 때에”(막 14:12-18a).

유월절 양들이 도살되는 무교절 첫 날 저녁은 유월절 축제 전날로 공관복음의 연대기에 의하면 목요일이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일몰 후(막 14:17)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었고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었다. 예수와 제자들도 최후만찬을 시작하였다(눅 14:18a). 공관복음의 연대기에 따르면 예수는 금요일로 넘어가는 목요일 밤에 예수는 체포되어 법정에 세워지셨고, 금요일 아침에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삼시(三時) 경(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의 죽음은 구시 경(오후 3시)이었다. 장례는 일몰 전 치러야 했다: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막 15:42-43a).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요구한 것이다. 토요일인 안식일은 예수께서 무덤에 계시는 날이다. 예수의 부활은 안식 후 첫 날인 일요일에 일어났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막 16:9a). 목요일 최후만찬 전승은 마가, 누가, 마태가 전해주는 가장 오래된 옛 전승이다.

공관복음의 연대기는 예수 심문과 십자가형 집행이 금요일인 유월절 축제 시에 일어났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유대인들의 대축제일에 빌라도 심문과 십자가형이 집행되었다는 것은 이해가 부담스럽다. 그리고 마가 자신이 기록한 축제일은 피하자는 음모자들의 이틀 전 합의와도 모순된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막 14:1-2). 이것이 전통적인 공관복음의 연대기가 직면한 어려움이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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