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1차 한국 조나단 에드워즈 컨퍼런스가 ‘21세기 에드워즈의 가치와 참된 부흥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24일 오후 예수비전교회(담임 도지원 목사)에서 개최됐다. 한국 에드워즈 컨퍼런스와 워싱턴트리니티연구원(원장 심현찬)이 공동주최했다.
세미나에 앞서 심현찬 원장이 환영 인사를 전했다. 그는 “본 컨퍼런스의 목적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과 한국교회를 세우기 위해 조나단 에드워즈의 지혜를 따라 청교도적 개혁주의 경건을 추구하는 동역자와 차세대를 격려하고 나아가 갱신과 개혁을 도모하는데 있다”며 “이번 컨퍼런스 주제처럼 21세기 성도에게 에드워즈의 가치는 무엇인지 동시에 일그러진 부흥의 얼굴을 넘어서 참된 부흥의 얼굴과 그 특징은 무엇인지 나아가 우리 개인과 한국교회의 적용점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조지 마스던 교수(칼빈신학교 석좌 교수)가 영상을 통해 ‘21세기를 위한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했다.
마스던 교수는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이해하려면 그가 서구 세계의 ‘근대’ 시대의 여명기에 살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시대 미국인 벤자민 프랭클린과 달리 그는 모든 것을 기계론적, 과학적, 기술적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하나님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성을 인식했다. 대신 에드워즈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자 보존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그 언어의 중심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에 대한 계시가 있다. 에드워즈는 그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계시를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으로 묘사한다. 그 사랑의 빛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주어진 사람은 그 빛에 이끌려 다른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인식은 그들이 가진 더 낮은 차원의 사랑의 방향성을 바로 잡아주게 된다”고 했다.
마스던 교수는 “에드워즈에 대해 많은 강연을 하면서 C.S 루이스가 남긴 말인 ‘모든 신학자에게 번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에드워즈의 최고의 통찰을 번역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즈의 어떤 통찰과 강조점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될지 고민하면서 저는 에드워즈의 유산과 가까운 동시대 미국인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유산을 대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드워즈와 프랭클린은 뉴잉글랜드 청교도 가정에서 불과 2년 차이로 태어났지만, 두 사람의 유산은 여러 면에서 정반대이다”고 했다.
이어 “그들의 유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방법이 하나 있다면 1700년대의 그 두 인물이 21세기의 세계를 방문한 시간 여행자들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각각 하루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우리가 그들의 호스트가 되어 설명을 해준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라며 “에드워즈는 2000년이 되면 기독교가 전 세계에서 승리하고 마지막 황금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후천년주의자였다. 그리고 천 년 동안의 평화, 번영, 진보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했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기독교가 놀랍게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문명이 기독교 천년 왕국 시대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스던 교수는 “오히려 에드워즈보다는 프랭클린은 오늘 날 시대를 바라볼 때 반가워 했을지도 모른다. 그 역시 몇 가지 변화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았겠지만, 재치와 유머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창의적인 통찰력이 포함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중 일부가 의심할 여지없이 증언할 수 있듯이, 매우 다른 문화권에서 온 방문자가 그 문화권 출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때와 같이 문화관 경험은 그러한 통찰력을 촉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명의 극적인 전환기에 살았단 위대한 사상가들은 그 결과 특히 심오한 통찰력을 갖게 된다. 어거스틴이 대표적인 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랭클린은 새롭게 등장한 근대 사상을 기독교를 버리는 이유로 삼았다. 반면 에드워즈는 청교도를 통해 물려받은 기독교 사상의 풍부한 유산과 관련하여 근대 사상의 함의를 이해하는 것을 자신의 사업으로 삼았다. 에드워즈의 가장 창의적인 작업의 대부분은 이 두 가지 관점이 서로을 어떻게 조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에 있다”며 “젊은 시절의 에드워즈는 자신의 신앙적 성장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졌다. 그가 나중에 쓴 ‘개인적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은 하나님이 누구를 영생에 이르게 하시고 누구눈 거부하여 영원히 멸망시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에 반대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끔찍한 교리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라고 썼다”고 했다.
마스던 교수는 “에드워즈는 이 골치 아픈 도덕적 문제를 어떤 영리한 도덕작 계산을 통해 해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와 그것이 근대 과학적 사고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패러다임의 전환’, 즉 하나님과 우주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용어로 설명한다”며 “근대 사상의 능력을 고려할 때 우리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하나님을 우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프랭클린과 당시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우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고 했다.
그는 “에드워즈는 새로운 과학 혁명이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 그가 기본적으로 본 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즉 하나님의 주권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들이 다른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에드워즈는 실제에 대한 이해가 우주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봤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왜 우주를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물음으로써 현실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그의 고전적인 기독교적 대답은 삼위일체의 완전한 사랑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어 하셨다는 것”이라고 했다.
마스던 교수는 “우리가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에 친밀하게 관여하시고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드러내신다고 해서 자연이 어떤 의미에서든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만약 우리가 이 우주와 순간순간 우주를 지탱해 주는 것이 물질적이고 비인격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으로 인격적이라는 인식을 함양할 수 있다고 가정하며 그것은 근대와 포스트모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감성들을 재조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에드워즈는 그의 설교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에서 이 신성한 사랑의 빛이 삶을 변화시키는 종교적 경험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잘 요약하고 있는데, 이 설교는 에드워즈를 읽을 때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이란 현실에 대한 신자의 전체 관점을 비춰주는 성령의 선물을 의미한다”며 “에드워즈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우리의 자유 선택 사이의 역설에 대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스던 교수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름다움과의 만남, 즉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기쁨에 놀라게 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수동적으로 관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아름다움ㅇ을 엿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 우리 자신의 사랑, 즉 우리가 하는 일에서 그 아름다움을 반영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 아름다움의 능동적인 힘에 대한 강조는 개혁주의 전통에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종종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마무리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요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빛의 아름다움을 태양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길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급한 사랑을 적절한 궤도에 유지시켜주는 중심 중력인 태양과 같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은 우리 개인의 작은 은하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감성을 기르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자신과 즉각적인 안락함을 현실의 중심으로 보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강화하는 현대의 물질주의적이고 기술적으로 통제되며 자기 찬양적인 감성들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마스던 교수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의 중심에 있는 위대한 빛이자 동력인 그리스도의 놀라운 희생적 사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의 아름다움이 저를 그 사랑으로 이끌어서 다른 사랑들도 올바른 궤도에 머무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가진 많은 사랑이 매일 저절로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를 계속 새롭게 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컨퍼런스는 이어 조현진 교수(한국성서대학교)가 ‘에드워즈의 [부흥론]을 통한 참된 부흥의 특징’, 심현찬 원장이 ‘에드워즈의 [뉴 잉글랜드 부흥 고찰]을 통한 참된 부흥의 특징, 정성욱 교수(미국 덴버신학교)가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에 나타난 참된 부흥의 특징‘이라는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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