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전격 통과됐다.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지난 24일 충남에 이어 두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나머지 5개 시도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제323회 임시회 본회의에 상정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재석의원 6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폐지안에 반대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시의회가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처리한 건 지난 2012년 이 조례를 제정한 지 12년 만이다. 하지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조례 폐지에 반대하며 재의를 요구할 것으로 보여 폐지가 확정될 때까지 당분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충남도의회에서도 재의에 의해 폐지가 확정된 것으로 보아 서울시의회에서 재의가 다뤄진들 결과가 달라지긴 어렵다고 보인다.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인천, 제주 등 7개 시·도에서 차례로 제정됐다. 이곳은 모두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이란 공통점이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 활동 전반에서 학생 인권을 우선 보장하며 성별, 성적 지향, 종교 등을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학생의 인권을 보호해 차별을 없애겠다는 당초의 취지는 권리만 부각되고 의무는 사라지게 만들어 교권 침해의 원인으로 비판 받아왔다. 상대적으로 교사의 인권을 추락하게 만든 사례가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의 학교 내 투신 사망사건이다.
교계는 학생인권조례가 전국 7개 광역시도에서 잇따라 제정되던 초기부터 교육현장의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조례 폐지운동에 적극 나섰다. 교계가 학생인권조례를 ‘나쁜 인권’의 전형으로 규정하고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게 된 건 학생의 인권 보장에만 편중돼 교사와의 상호 존중이라는 균형이 무너진 것도 문제였지만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조항이 궁극적으로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력을 낼 것이란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교계가 우려한 대로 학생인권조례는 처음부터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학생이 문제를 일으켜도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게 만들어진 조례는 학교를 무너뜨리는 ‘시한폭탄’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서이초 교사 투신 사건은 그 실체의 일부가 드러난데 불과하다.
학생인권조례가 가진 태생적 문제점을 단순히 학생과 교사간의 기울어진 균형추만에 포커스를 맞추면 해결하기 어렵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에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에까지 ‘성적 지향’ 문제를 포함시킨 이들의 숨은 의도가 청소년기에 젠더이념, 즉 동성애 옹호 사상을 주입시키려는데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회에서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학교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시도의회가 제정된 조례를 폐지하는 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절차적으로 까다로울 뿐 아니라 시일도 많이 소요돼 그 과정에서 무산되는 일이 허다하다. 시민들이 나서 폐지를 청구하는 건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이다.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 폐지 청구 과정이 딱 그랬다. 시민단체가 어렵사리 6만4천여 명의 서명을 모아 서울시의회에 청구한 폐지조례안은 지난해 3월 13일 서울시의회 의장에 의해 발의됐다. 하지만 발의 된지 9개월이 넘도록 해당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에 조차 상정되지 않았다. 폐지에 반대하는 측에서 서울행정법원에 낸 폐지안 수리·발의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상임위 상정을 하루 앞두고 받아들여지는 등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교계 시민단체들은 ‘나쁜 인권’이 자라나는 청소년과 학교 현장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치기 전에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는 믿음과 신념으로 두드리고 두드린 끝에 마침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의 문을 열어젖히는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생인권 조례 폐지가 주는 의미가 더욱 값지다고 하겠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 학생인권조례폐지전국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회가 조례 폐지안 통과시킨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됐다고 ‘나쁜 인권’을 둘러싼 먹구름이 완전히 걷혔다고 보기는 이르다. 서울시교육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이번 총선에서 승기를 잡은 더불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 아예 ‘학생인권 보장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앞으로도 뛰어넘어야 할 난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조례 폐지에 반대해온 진영에선 학생 인권 조례 폐지가 학교에서 학생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와 유사한 법과 조례를 다시 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시도와 그렇지 않은 시도를 비교해 봐도 조례를 시행하는 곳에서 훨씬 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학생의 인권은 조례가 있든 없든 보호하고 보장하는 게 건 기본 상식이다. 조례로 인해 학교 교육이 무너지고 사회적 파급 효과가 심각한데도 오로지 조례, 또는 법안에 목을 매는 이들이 정말 학생의 장래를 위한다면 교사·학생·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에 균형을 맞추고 무엇보다 ‘성적 지향’이라는 독소조항부터 솎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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