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야고보서는 이미 믿은 신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실천적 규범이다.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가라는 권면이다. 구약의 잠언과 비견되는 신약의 윤리적 강령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해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뜻과 방식에 관해 설명하는 교리서신서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특정 주제를 심층적으로 논술하지 않고 여러 사안들을 거의 같은 비중을 갖고 조금씩 진술하고 만다.
그렇다고 무작위적이고도 중구난방식의 서신이 결코 아니다. 나름의 논리적인 연결순서가 있을 뿐 아니라 사도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 몇이 있다. 우선 면밀히 살펴보면 앞 문단에서 논의한 핵심 단어가 그 다음 문단에서 논의하려는 내용과 자연히 이어지고 있다. 또 사도가 논하는 핵심 주제는 “행함이 따르는 믿음”인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혀를 다스려 온유한 말을 하라고 강조한다.
마지막 5장의 후반부는 어쨌든 본서신의 결론에 해당된다. 그 내용이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행함이 따르는 믿음 중에 말을 다스려야 한다는 서신의 핵심주제를 재확인하는 뜻이라 아주 자연스런 끝맺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분명히 기도를 강조하지만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사항이 하나 있다. 찬송도 함께 강조했다는 것이다.
본문은 고난당하면 기도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찬송하라고 말한다. 아무리 평범한 일상이라도 즐겁든지 괴롭든지 둘 중 하나이기에 고난과 즐거움은 인생사 전부를 말한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에게 행할 말은 오직 기도 아니면 찬송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의심, 불만, 불평, 따짐, 불신, 분노, 저주, 배교, 거역의 말들은 원칙적으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너무 힘들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도 그래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윗이 시편에 그런 내용의 말들을 하나님께 쏟아놓았지만 어쨌든 기도하는 처음 부분에서 그랬고 나중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로 끝을 맺었다. 특별히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 불만 분노 저주를 직접 그들에게 퍼붓는 대신에 하나님께만 들고 나왔다. 사람에게 절대 그러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와 권능 안에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깨끗이 씻고 그들을 용서한 후에 다시 원수까지 사랑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신자는 다윗처럼 하나님에게만은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생각뿐 아니라 당신에 대한 그런 것들도 가져 나와도 된다. 하나님만이 모든 굽은 것을 바로 잡을 수 있기에 하나님에게만 들고 나와야 한다. 다른 이들과 대화나 관계를 이어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에게 나아가 당신과의 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바로 잡은 후에 다른 이를 만나야 한다. 또 그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적 의미이자 능력이다.
그럼 야고보 사도의 결론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하나님에게 할 수 있는 오직 두 가지 말만 해야 한다. 기도 아니면 찬송이어야 한다. 물론 사람에게 기도할 수 없고 사람을 찬송할 수 없으니 용어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자를 보면 기도하는 심정으로 위로 격려하며 함께 고민을 나눠야 한다. 그들을 살리고 힘주는 말만 해야 한다. 즐거운 일을 겪는 자를 보면 함께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어야 한다. 다른 이의 인생도 고난 아니면 기쁜 일 둘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에 신자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로 만나도 그들과 나눌 대화는 “기도 같은 위로”와 “찬송 같은 칭찬”만 해야 한다.
2016/7/11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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