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의한 아동 살해는 자녀의 의사와 관계없이 생의 기회를 박탈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개인적인 비극’, ‘가정의 불가피한 결정’으로 바라보는 온정적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로 사망한 아동이 약 30%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동학대 대책이 수차례 발표되고 제도가 개선되는 동안에도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지금까지 미비하다. 이에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예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 대응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1) 아동사망검토제도의 신속한 도입, 2) ‘자녀 살해 후 자살’의 명시적 아동학대 규정 및 국가 공식 통계 구축, 3) 위기 가정 사전 발굴 및 사회 안전망 강화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중 ‘자녀 살해 후 자살’로 사망한 아동은 14명으로 보고 되고 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시도의 경우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통계는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발생의 원인을 찾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공식 통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4월 정부는 ‘아동정책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아동학대의 주요 사망사건을 분석해 개선 과제를 도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복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동사망 사건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아동사망검토 제도가 조속히 도입돼야 한다. 또한, 자녀 살해 후 자살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는 정신건강, 가정폭력, 경제적 위기 등을 아동에 대한 위기 신호로 인식하고 고위험군 가정을 발굴해 전문적인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
세이브더칠드런 정태영 총장은 “부모에 의해 생명권을 박탈당한 아이들의 죽음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이다. 자녀는 자신의 삶을 사는 독립적인 인격체이며, 부모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는 선택하지 않은 결과로 스러지는 삶이 없도록 여러분의 힘을 모아 주시길 바란다”며 캠페인 참여를 촉구했다.
한편,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11일 인재근 국회의원, 법무법인 율촌과 공동으로 국회 간담회를 개최하고 자녀 살해 후 자살 등 아동사망 사건을 막기 위해 아동사망검토제도의 국내 도입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또한 자녀 살해 후 자살 예방을 위해 아동사망검토제도 도입, 아동학대 관점에서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규정 및 통계 구축 등 일곱 가지 제안 사항을 담은 정책 제안서 '비극을 넘어 대안으로'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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