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국 정부에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결의안엔 ‘중국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난민 인정 절차를 시행하지 않고 체포, 구금, 강제 북송하는 것을 규탄한다’는 비교적 통상적인 내용이 담겼으나 국회가 여야를 초월해 중국의 만행을 규탄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작지 않다.
국회가 여야 합의로 내놓은 결의안에는 목숨이 위태로운 탈북 난민을 사지로 내몰아선 안 된다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들어있다. 여야가 힘겨루기를 할 만한 정파적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그런 만큼 모처럼 여야가 합의를 이룬 대로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모습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기대는 이미 지난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소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깨졌다.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이 결의안의 내용과 상관없는 불법 체류자 중 난민심사 통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지엽적인 문제로 시간을 끈 탓이 컸다.
그러나 어렵사리 해당 위원회가 논의를 재개해 본회의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건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국회가 기왕 결의안을 낼 거면 조금이라도 빨리 중국과 북한, 그리고 국제사회에 탈북민 보호에 대한 의지를 천명할 순 없었나 하는 점이다. 중국이 지난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탈북민 500~600명을 기습 북송한 지 50여 일이 지나도록 국회가 시간을 끈 건 뭐라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아쉬운 건 둘째 치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여야가 합의안 결의안에 표결 참석 의원 260명 중 253명이 찬성하고 7명은 기권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어떤 사안에 기권하는 건 존중돼야 하겠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탈북민을 강제 북송해선 안 된다는 내용에 기권했다는 건 얘기가 다르다.
결의안에 기권한 의원은 민주당 김정호·민형배·백혜련·신정훈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 그리고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다. 이중 민주당 백혜련·신정훈 의원은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자 뒤늦게 “전자투표기 오류였다”며 본인의 입장을 바꿨다. 거센 비판 여론에 내놓은 변명치곤 궁색해 보이지만 표결 후에라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다.
5명 중 정의당 강은미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과거 통진당 출신으로 친북적 성향을 보여온 전력으로 볼 때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민주당 김정호·민형배 의원, 위안부할머니 후원금 횡령 의혹으로 기소돼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기권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의원은 저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노동·인권 운동 경력을 쌓아 정치에 입문했다. 그런데 수개월 구금했던 탈북민을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집단적으로 강제 북송한 중국의 비인도적인 행위와 코로나19로 굳게 닫았던 국경이 열리자마자 탈북민을 마치 굴비 엮듯이 포승줄에 꿰어 끌고 간 북한의 만행은 소위 노동 인권운동가들이 추구하는 정의의 개념과 거리가 멀지 않은가.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태영호 의원은 지난 1일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진 야당 의원들을 향해 “기권한 의원들 면면을 보면 인권활동가 출신, 약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한다는 단체 출신, 약자 이익을 도모한다는 정당 출신 의원들”이라며 “왜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중국과 북한 김정은 정권 심기부터 살피나”라고 되물었다.
유엔 난민조약에 가입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란 막강한 지위에 있는 중국이 자국에 불법 구금한 탈북민을 북한에 강제 북송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범법자들이지 국제법상 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국제법상 전혀 설득력이 없다. 탈북민은 거의 다가 북한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다. 탈북 과정에서 붙잡히거나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되면 어떤 가혹한 처벌이 가해지는지 전 세계가 다 아는데 중국 당국만 부인한다고 진실이 덮어질 수 없다.
이번 국회 결의안이 국제법상 어떤 효력을 지니는 건 아니다. 하지만 12월에 유엔 총회에서 있을 북한 인권 결의문 채택에 앞서 대한민국 국회가 중국과 북한에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유엔 인권보고서는 강제로 끌려간 탈북민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국가반역죄로 총살형에까지 처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이런 반인륜적인 만행의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기권했다는 건 중국과 북한 강제 북송 행위를 용인하겠다는 의사 표시가 아닌가. 탈북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란 점에서 이들이 과연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