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이란 낯선 이름이 전국적으로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그 이름이 온 국민에 회자된 건 광주광역시가 4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이 확산되면서부터다. 지자체가 그의 이름으로 공원을 조성할 정도면 역사적으로 훌륭한 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인 게 문제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간 뒤 중국공산당 당원이 됐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중공 인민해방군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고 6·25때는 중공군복을 입고 서울까지 내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15 해방이 되자 월북해 북한 인민군 구락부장, 인민군 협주단장으로 있으면서 ‘조선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김일성에게도 충성을 바쳤다. 그러나 6.25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이 연안파를 숙청하자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귀화했다. 1976년 사망한 후 중국 혁명열사 묘에 묻혔고, 2009년 ‘신중국 수립 영웅 100인’에 선정됐다.
이 사람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중국에 소개한 이가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2월 중국 방문 기간 중 베이징 대학교에서 연설을 하면서 “한국의 광주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그의 생가를 찾고 있다”라고 그를 띄웠다.
문 전 대통령이 당시 ‘정율성’에 대해 언급한 건 아마도 중국과 한국과의 깊은 인연, 즉 두 나라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하필 이런 공산주의자를 그 매개체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율성’은 중국 인민군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하는 등 음악으로 중국과 북한에 공헌한 인물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을 뿐이지 한국인이 아니다. 월북해 북한에서 활동했고 중국으로 귀화했으니 엄밀히 말해 북한계 중국인이다. 이 사람이 어느 하나라도 한국과 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면 또 모르겠다. 태어난 한국을 등지고 북한과 중국에 충성을 바친 중국 국적의 공산주의자를 거론했다는 자체가 스스로 국격을 깎아먹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가 ‘정율성’ 이란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추서하려고 절차를 진행했었다고 한다. 지난 2017년 12월 문 전 대통령 중국 방문 직후에 청와대에서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추서를 긍정 검토하라고 주문했던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청와대까지 나섰으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결국 심사과정에서 그의 이력에 발목이 잡혔다. 보훈처 내부에서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북한에서 지역 선동부장을 맡고 인민군가를 작곡한 인물을 대한민국 유공자로 추서하는 게 법 위반이란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활동을 덮기 위해 독립운동 관련 공적을 발굴하려 애썼으나 파면 팔수록 북한을 도운 활동만 너무나 명백히 드러나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게 보훈부의 설명이다.
이런 인물의 역사적 공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6.25때 대한민국을 침략한 북한과 중공군의 사기 진작에 앞장섰다면 우리에겐 전범이다. 그가 충성을 바친 북한과 중국에도 없는 역사공원을 한국에서 수십억 원의 혈세를 들여 짓는다는 건 해괴망측한 일이다.
국가보훈부가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전남 순천에서 열린 6·25 참전 학도병 기념행사에서 중국 음악가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던 응원대장”이라며, “단 1원의 예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말로 광주광역시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의 중단을 요구했다,
지역 여론도 싸늘하다.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 단체들까지 반대하고 나선 게 이런 분위기를 말해준다. 연평도 포격 도발로 전사한 서정우 하사의 모친은 “광주 현충탑 정비할 예산이 없다는 시가 공산주의자 공원을 건립하는데 48억원을 쓰겠다는 건 광주 정신 모독”이라며 개탄할 정도다.
한국교회언론회도 지난 22일 발표한 ‘광주가 평양인가? 중공영웅과 북한영웅을 기리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중공으로 귀화한 인물을 국민 세금으로 이처럼 높이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과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에 대한 모독이며 국민 무시”라고 성토했다.
그럼에도 강기정 광주시장은 중국과의 ‘우정의 정치’를 내세우면서 사업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정율성’ 공원이 세워지면 중국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인데 6.25 전쟁 때 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을 지역 마켓팅 사업에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이미 광주 양림동엔 ‘정율성로(路)’와 동상이 있고 그가 잠시 다녔다는 전남 화순의 초등학교 건물 외벽엔 대형 초상화까지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여기서 우리 국민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 ‘정율성’의 이름은 ‘정뤼청’이고 중국인이다. 그런 인물에 대해 우리 국민이 더 알고 기억해야 할 무슨 가치가 있나. 그를 추앙하는 건 중국과 북한이면 족하다. 역사적 공적을 인정해 역사공원을 짓는다면 한국이 아닌 중국인이 중국 땅에 짓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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