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무료 시음을 가장해 학생들에게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나눠주는 사건이 발생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경찰 조사 결과 마약 음료를 나눠준 용의자들은 이 음료를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신제품 또는 ADHD약이라고 속여 시음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심각한 건 청소년들에게 마약이 유포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적발된 용의자들은 학원가뿐 아니라 인근의 한 중학교에서도 중학생들을 상대로 마약 음료를 건넨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4명 모두 경찰 마약수사대에 체포됐으나 학원가에까지 침투한 마약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자녀들을 향한 부모들의 노심초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학원가 마약 음료수 사건은 마약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에 다방 손님 또는 택시 승객에게 환각 성분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청소년에게까지 이처럼 쉽게 마약의 손길이 뻗칠지는 미처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의 유통·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교육 당국도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 대상 약물 오남용 교육을 1학기 안에 실시하도록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급증하는 마약범죄로 이미 지난 2016년에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검찰에 따르면, 올해 1~2월 검거된 마약사범만 2600명이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2.4%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이 총 1만839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그 기록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마약범죄가 이토록 급증하게 된 원인이 문재인 정부 때 검찰 조직 축소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문 정부는 2018년 검찰 조직을 축소하면서 마약 담당 부서를 통폐합했다. 대검 강력부의 마약 수사 부서를 없애고 대검 마약과를 조직범죄과에 흡수시켰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마약밀수 중 500만 원 이상만 수사할 수 있게 됐다. 대검 마약범죄 모니터링 시스템의 예산마저 삭감되면서 그나마 가동이 멈춰버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볼 때 마약이 우리 사회에 이토록 활개를 치고 있는 현실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우리나라가 국제 마약범죄의 표적이 된 걸 모두 지난 정부 탓으로 돌릴 순 없다. 마약범죄가 고도화되면서 SNS를 통해 마약 시장이 음성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에까지 마수의 손길이 뻗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때 좀 더 철저한 수사와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졌더라면 마약범죄가 학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까지 미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걱정스러운 건 10대·20대 등 청년 마약사범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2017년에는 전체 마약사범 중 10~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15.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4.2%로 두 배 이상 늘었다. 10대 마약사범 수도 2017년 대비 4배나 뛰었다. 이는 SNS, 해외 직구 등을 통해 마약을 구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도 마약류의 치외법권 지대는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 중에는 호기심에 한두 번 마약에 손을 댔다가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서야 상담창구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신앙을 가진 청소년의 경우 마약이 교리적으로나 교회 분위기상 용납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더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길 꺼리게 돼 음성적으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성인은 마약이 나쁜 것인 줄 알면서 자기 선택으로 마약을 접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그것이 나쁜 것인지 뚜렷한 판단 기준이 없이 호기심과 타의에 의해 접했다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런 청소년들에게 교회가 무조건 나쁘다, 안 된다고 하면 그들은 결국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며 충고한다. 교회만이라도 어른들이 모르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 음료수 사건이 터지자 검찰과 경찰, 관세청, 교육부 등 관계 당국이 지난 10일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약범죄를 막는 데는 검·경의 수사와 단속만으로 근절이 될지 걱정스럽다. 먼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마약 척결을 놓고도 제각각 목소리를 내는 여야 정치권부터 각성해야 한다. 지자체와 교육당국, 일선 학교뿐 아니라 종교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미리 대비해야 할 일을 벌어진 후에 뒤늦게 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약범죄는 경우가 다르다. 늦었다고 한탄하고 있다간 도둑에게 안방을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 교육계, 종교계 모두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든 마약범죄를 뿌리 뽑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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