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요한복음 5장 22절에는 아버지가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이 심판한다라고 적혀 있지만, 요한복음 3장 17절과 요한복음 12장 47절에는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적혀있고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심판할 이가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셨나요? 구원하러 오셨나요?

[답변]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죄송하지만 엄격히 말해 본 질문은 기독교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 질문입니다. 물론 인용하신 성경구절들을 상호 비교해 보니 각기 다른 의미를 말하는 것처럼 혼동되어 의아심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심이 생기는 까닭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의 길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기독교에서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양상을 가집니다. 쉽게 말해 구원 받으면 심판에서 면제된 것이며, 구원 받지 못하면 심판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로 심판 받는다는 의미도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 둘을 따로 떼어서 별개로 이해하고 적용해선 안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심판이나 구원만 하러 왔다고 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각 사람의 행위를 보고 점수를 따져서 심판 받을 자만 골라 심판을 주고 구원은 전혀 계획을 하지 않거나 다음 기회로 유보되었다는 뜻입니다. 또 구원만 주러 왔다고 치면 마찬가지로 구원 받을 자만 구원해주고 심판은 계획에 없거나 다음 기회로 유보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과 심판을 나눠서 생각하는 바탕에는 구원 받을 자, 심판 받을 자, 아직도 결정될 수 없는 자, 앞으로 상황에 따라 심판에서 구원으로 혹은 심판에서 구원으로 바뀔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구원과 심판의 중간적 유보상태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고 그렇지 못하면 심판 받는 것입니다. 그 중간 회색적 유보상태는 아예 없습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으로 초림하셨을 때도 그분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한 자는 구원을 얻었고 동시에 그렇지 못한 자는 모두 심판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영광중에 강림하실 때에도 예수 믿고 있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며, 정확히 말해 이미 구원을 얻은 것이 궁극적으로 완성되며, 그 때까지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초림이나 재림이나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므로 그 중 하나의 목적으로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는 구원과 심판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함께 계획하여 주관 시행하는 합동사역입니다. 성경에 아버지 하는 일을 아들이 모른다는 것 같은 표현을 잘 해석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공사역을 하는 동안 즉,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원래 지녔던 하나님 본체의 영광을 되찾기 전의 인성을 강조하는 내용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구원과 심판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나누자면 모든 일정과 방식을 주관하는 이는 성부, 이 땅에 초림 또 재림하여 직접 구원과 심판을 이루시는 이는 성자, 주님의 재림 때까지 죄인의 심령에 역사하여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회심하게 만드는 일은 성령이 담당하십니다.

셋째로 알 것은 성경의 거의 모든 예언은 당장 일어날 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 먼 장래나 마지막 일에 일어날 일을 다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특정한 하나의 장소나 시기나 사람에게만 한정지어 해석해선 안 됩니다.

이 세 원리를 종합하면 성경이 질문자가 오해하듯이 예수님이 구원 혹은 심판하신다고 둘 중 하나만 기술하고 있다 해도 초림과 재림을 다 포함하고, 그 두 시기 다 구원과 동시에 심판이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성부 성자를 구분해서 말해도 사실은 삼위하나님의 합동사역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전 지식을 갖고 인용하신 구절들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위에 말씀드린 대로 삼위 하나님이 주관하는 심판(동시에 구원)이지만 이 땅에 직접 오신(또 앞으로 오실) 예수님이 직접적 가시적으로 심판(구원) 사역을 수행하셨다는(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일차적으로 초림에 해당되지만 재림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구원 받지 못하면 심판이며 그 둘은 동시에 수행된다는 원칙은 불변입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오기 전에는 모든 인간이 죽어 마땅한 즉, 하나님의 진노 아래 심판받아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절망 중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십자가 구원의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도 심판은 마땅히 필연적으로 이뤄질 것이나 특별히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기에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려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라려 함이로라.”(요 12:47) 이는 요한복음 3:17절과 같은 뜻으로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을 믿지 못하는 자는 그 전에 이미 하나님 진노 하에 심판의 자리에 떨어질 운명이었고 그것에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기에(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에) 구태여 주님이 따로 심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특이하게도 마지막 날에 심판할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믿고 구원 받으라는 말을 거역했으니 그 결과 필연적으로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도 예수님의 그 말 즉, 당신을 믿고 구원 받으라는 말을 수용 순종한 자는 당연히 구원받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심판과 구원을 나누는 기준은 오직 하나, 진정으로 거듭나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는지 여부뿐입니다. 시간과 장소별로 하나씩 따로 일어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럼에도 초림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심판)에만 있었는데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구세주로(구원하려) 오셨다고, 반면에 재림 때는 구원의 길을 십자가로 활짝 열어놓고 오래 참아주었는데도 믿지 않는 자는 심판할 수밖에 없기에 심판주로(심판하려) 오실 것이라고 흔히 표현할 뿐입니다. 실질적으로는 둘 다를 행하시러 오셨고 오시지만 말입니다.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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