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사도바울은 어차피 피차일반의 죄인끼리 굳이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빌2:3)고 말씀하셨나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 걸까요?
[답변]
성경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가장 먼저 또 가장 힘을 주어 강조하는 것은 문맥상의 의미부터 찾으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큐티나 성경을 묵상할 때도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입니다. 이 질문도 마찬가지인데 그 한 절만 따로 떼어서 보면 당연히 그런 의문이 듭니다. 빌2:1-4가 하나의 문단으로 그 안에서 뜻을 찾되 앞뒤 문맥의 의미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우선 1-4절의 주제는 성도의 교제에 관한 권면입니다. 전체 문맥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오는데 바울이 성도 교제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가르치려는 의도입니다. 이 문단 앞에선 "너희가 한마음으로 협력하라"고 권하므로(1:27)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에 불일치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1:15에서 '투기와 분쟁으로', 또 1:17에서 '다툼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했듯이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교만해져서 화합이 안 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빌립보 교회의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바울로선 각자가 먼저 겸손해져야 한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은 성도 교제에 관한 직접적인 가르침이나, 5절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시작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문단(5-11절)은 성도 교제할 때 성도들이 품어야 하는 마음을 예수님의 경우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다 같이 겸손해져야 하는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인간에겐 예수님보다 낫게 여겨질 측면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죽음의 형벌을 받는 죄인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5-11절 내용) 죄에 찌든 인간의 영적 참상이 너무나 불쌍했기에 당신의 대속 죽음의 은혜로 구원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인이 말씀하신 대로 "피차 일반의 죄인"이긴 해도 자신부터 천하 죄인 중의 괴수라고 철저히 자각하고 시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 안에서 신자가 취해야 할 참된 영적 겸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신앙을 단순히 도덕적 차원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도덕과 상충 되지는 않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절대적으로 참되고 온전한 선을 깨달아서 삶에 실현해야 합니다. 모든 신자가 예수님과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면 다른 신자들을 자연히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게 되는데 그것이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긴다는 더 중요한 뜻입니다. 그럼 필연적으로 교회 안에 교만에 따른 시기 분쟁은 사라지고 예수 안에서 참된 성도 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참고로 인용하신 예수님의 두 말씀도 문맥 안에서 그 뜻을 살펴야 합니다. 아주 간략하게 살피면 첫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강령이라는 뜻입니다.(마22:34-40)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야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그럼 이웃을 자기 대신에 사랑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아질 것이라는 말씀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형식적 외식적 믿음과 태도를 꾸짖는 말씀입니다.(마23:1-12) 사람들 앞에서 도덕적 의와 종교적 경건으로 칭찬받아 높아져도 정작 그 백성을 섬기지 않고 대접만 받으려 했기에 하나님의 나라에선 거꾸로 낮아질 것이며 당연히 그 반대가 옳다는 뜻입니다.
2023/3/3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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