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한국에 도전하는 것은 곧 ‘한미동맹’ 전체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상시 도발과 위협에 미국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오스틴 장관은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우리의 적과 경쟁자들은 만약 그들이 우리 중 한 나라에 도전할 경우 ‘한미동맹’ 전체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점을 안다”라고 했다. 이는 곧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경우 ‘한미동맹’과 나아가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제공 약속이 그만큼 확고하니 안심하라는 뉘앙스다.
미 국방장관의 이런 언급은 한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철통같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표현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을 향한 우회적인 경고이자 다른 한편으론 미국의 핵우산에 불안감을 느낀 한국을 안심시키려는 뜻도 있어 보인다.
미 국방장관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일깨우는 동시에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밝힌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선은 북한의 오판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고, 만약 끝내 도발을 감행한다면 한국을 지키기 위해 끝내 핵무기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런 그의 언급은 아무래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자체적으로 핵 개발을 언급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1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여기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스틴 미 국방장관을 만나 이런 당부를 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한국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실효적이고 강력한 한미 확장억제 체계가 도출되도록 한미 간 협의를 진행해달라”. 그러자 오스틴 장관은 “‘한미동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혈맹이자 동북아 안보의 핵심축이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미국은 연합방위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런데 오스틴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전한 말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 간 확장억제 실행력을 더욱 강화해 한국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말이다.
아무래도 윤 대통령이 최근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것에 대해 미국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스틴 장관이 강조한 ‘한국인의 신뢰’란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핵 대응 능력을 갖추는데 미국이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미 국방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언급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 간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핵 억지력을 행사하는데 한미가 공조하는 걸 말한다. 그것이 핵우산이든 핵 재배치든 미국으로선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는 것보단 낫다고 여기는 것 같다.
얼마 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한미 핵 공유 운용 연습’ 정례화를 언급한 직후 미국 기자가 확인을 요구하자 ‘No’라고 했다. 한마디로 그럴 계획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후에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발언이 나왔고 미 국방장관이 방한했다.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볼 때 한국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전과 다른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지난달 30일 최종현학술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북핵 위기와 안보 상황 인식’이라는 주제로 1대1 면접조사를 했는데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76.7%가 ‘한국이 독자적 핵 개발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우리도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이 조사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무려 77.6%에 달했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 능력을 극대화해 이미 80~9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로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갖추게 되자 미국의 확장억제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핵무기 제조 능력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하다. 이런 현실에서 윤 대통령이 꺼낸 든 ‘핵무장’ 카드 또한 무모하다 할 수 없다. 국민 대다수가 독자적으로 핵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고 대남 전술핵 사용까지 공언한 마당에 무조건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순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고 국민의 정서인 것 같다. 다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한미동맹’이 임계점에 도발했다는 전제하에서여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무기는 굳건한 ‘한미동맹’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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