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 대표 박호용 목사
아자브 대표 박호용 목사 ©아자브
아자브 무브먼트(AJAB; Again Jesus, Again Bible, 대표 박호용 목사)가 ‘아자브(AJAB) 운동과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이란 주제로 1일 서울 송파구 축복교회에서 제1회 아자브 성경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는 오는 3일까지 이어진다.

강사로 나선 아자브 대표 박호용 목사는 “한국교회가 선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흥을 경험했지만, 부패의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며 “한국교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무너진 성’인 한국교회의 개혁을 미룰 수 없기에 아자브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흔히 종교개혁 하면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오직 믿음’이나 ‘오직 은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직 성경(말씀)’과 ‘오직 그리스도(예수)’”라며 “루터의 종교개혁은 ‘바울 복음’에 기초한 ‘로마서의 재발견’이었다.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이한 오늘의 시점에서 나는 바울 복음보다 더 근원적인(Ad fontes!) ‘예수 복음’에 기초한 ‘요한복음서의 재발견’을 말하고자 한다”고 했다.

박 목사는 “아자브(AJAB)란 Again Jesus, Again Bible의 이니셜로서, 종교개혁의 구호인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되돌아가자’, ‘다시 성경 말씀으로 되돌아가자’는 복음으로의 환원 운동이다. 이 운동은 오늘 변질과 타락으로 방향을 잃고 헤매는 한국교회를 다시 회복하는 ‘한국교회 재건운동’이며, 분단된 조국을 복음으로 다시 잇는 ‘복음통일운동’이며, 나아가 복음을 열방으로 증언하는 ‘세계선교운동’”이라고 했다.

그는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교회는 반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을 하였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모임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와 프란시스코 자비에르(1506-52)가 조직한 예수회(Jesuit)이다. 예수회의 목적은 ‘교황을 위하여’, ‘가톨릭교회를 위하여’에 있었다. 그런데 아자브회(AJABA)의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에 있다”고도 했다.

박 목사는 “종교개혁운동은 무엇보다도 성경과 씨름하는 학문적 노력으로부터 결실한 것이다. 이는 성경 연구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루터 연구의 권위자인 발터 폰 뢰베니히의 말을 인용했다. “종교개혁은 환상이나 비합리적 경험으로부터 자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문적 노력으로부터 자라난 것이다. 루터는 본문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리하여 분명한 모순을 인식했다.”

박 목사는 “루터의 바울 복음의 재발견은 ‘하나님의 의’의 재발견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중세 가톨릭교회(스콜라신학)가 가지고 있던 인간(나) 주어를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으로의 주어바꾸기(교체) 운동이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 이것이 종교개혁의 핵심 모토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핵심 주제인 이신칭의(以信稱義)는 ‘하나님의 의’(롬 1:17)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인간을 주어로 하는 ‘능동의 의’(active righteousness, 인간의 공로가 포함된 의)를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수동의 의’(passive righteousness,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의)로의 ‘주어교체운동’(갈 2:20)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종교개혁 50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바울 복음에서 보다 더 근원(Ad fontes!)인 예수 복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는 바울신학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에서 예수 선포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막 1:15; 마 3:2; 요 3:3,5; 18:36)로의 강조점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하나님의 주권, 지배, 통치)를 의미한다(시 68:24; 103:19). 이를 위해 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찾아오신다(요 1:14). 따라서 ‘회개’란 내가 왕 삼았던 것(막 10:17-31; 마 19:16-30; 눅 18:18-30)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왕의 교체)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이는 동양에서 소위 ‘천당(天堂)’ 개념, 즉 인간이 그 어딘가에 있을 장소를 ‘찾아가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즉 하나님 나라(천국)란 인간이 주어가 되어 ‘내가 찾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이 찾아오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의’가 ‘능동의 의’가 아닌 ‘수동의 의’인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 또한 ‘능동의 나라’가 아닌 ‘수동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시 말하기, 즉 ‘내가 가는 나라’에서 ‘하나님이 오는 나라’로의 주어바꾸기(주어의 교체), 즉 ‘회개 운동’이 바로 아자브 운동”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빗나간 신학과 논쟁하기 위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95개조 논제>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중세 가톨릭 신학이 ‘교황과 교회의 영광’이라는 인본주의적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을 주장한 데 반해, 루터는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신학’이라는 신본주의적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주장했다. 그에 따라 지난 500년 동안 개혁교회는 루터가 주장한 십자가 신학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또 하나의 복음인 ‘부활의 신학’(Theology of resurrection)이 갖는 복음(부활)의 능력을 상실하였다. 부활 복음의 능력이란 크리스천의 3대 적(사탄과 죽음과 세상)을 이기는 힘을 말한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서는 ‘부활의 신학’(요 11:25-26)을 통해 예수께서 명령하신 제자의 길로서의 십자가의 길(요 21:15-19)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예수의 길은 ‘십자가-부활의 구조’이지만, 제자의 길(제자도)은 ‘부활-십자가의 구조’라는 점을 다시 말함으로써 사탄과 죽음과 세상에 져서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기서 ‘부활의 복음’의 중요성은 주님께서 부탁하신 제자도에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마 16:24). 제자도의 측면에서 보면 ‘부활의 신학’은 ‘십자가 신학’의 전제가 된다(요 16:33).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다. 이는 그들에게 죽음의 강을 넘어선 부활 체험(부활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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