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식량 생산 차질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재앙에 재앙을 더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식량 위기 사태에 연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기후 위기로 이미 강세를 보이던 세계 곡물 가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맞물려 급등 조짐을 보이면서다.

세계적으로 밀과 옥수수 등 곡물 수급 불안이 커지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들도 '식량 창고'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주요 곡물 생산국들을 중심으로 식량을 무기 삼는 움직임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21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는 지난 14일(현지시간)부터 정부가 허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밀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인도는 유럽연합(EU·1억3650만t), 중국(1억3500만t)에 이어 세계 3위 밀 생산국이지만 수출량은 전 세계 수출량의 4%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도는 밀 생산량 대부분을 자국 내에서 소비해왔지만, 전 세계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공급량이 급감하자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실제 올해 4월 인도는 지난해 동월보다 5배 이상 늘어난 140만t을 수출했다. 하지만 올봄 기록적인 폭염으로 밀 생산량이 급감하고 가격 상승에 따른 식량 안보 위기에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올해 60% 이상 오른 국제 밀 가격은 인도의 수출금지 조치로 또 한 번 급등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가격은 5.9% 상승해 두 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식용유의 원료인 팜유도 심상치 않다.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자국 내 팜유 가격이 급등하자 지난달 28일부터 팜유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식용유 가격이 정부 목표치인 리터(ℓ)당 1만4000루피아(약 1232원)까지 하락하기 전까지 수출을 금지할 계획이었으나 농민들의 반발로 오는 23일부터 수출 금지령을 풀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산 팜유 수출 중단으로 국내에서도 식용유 대란 조짐이 나타났다. 정부는 국내 업체들이 최대 4개월가량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일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사재기 수요가 커지면서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요 식량국들의 수출제한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러시아가 대러 제재 등에 대한 보복 조치로 6월까지 밀 수출을 중단하자 카자흐스탄, 세르비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도 수출을 금지했다.

빵이 주식인 이집트는 오는 6월까지 밀, 옥수수기름 등의 수출을 막았다. 이란, 쿠웨이트, 아르헨티나, 알제리, 터키, 튀니지 등도 수출금지 조치로 자국 식량 보호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식량 위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는 국내 곡물 수요량 2104만t 중 1611만t(76.6%)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세계 7대 곡물 수입국이다. 특히 밀, 콩, 옥수수의 수입 비중은 95.0%로 대부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을 보면 쌀은 92.1%에 달하지만 밀은 0.5%, 콩 6.6%, 옥수수 0.7%에 머물렀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1960년대까지 90%를 넘었지만, 농산물 시장 개방과 도시화 등으로 인해 해마다 하락해 2020년 기준 20.2%에 그쳤다. 2021년 식량안보지수(GFSI)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2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처럼 곡물 수입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의 경우 가격 변동성에 취약하기 때문에 세계 곡물 가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주요 곡물 생산국의 식량 보호주의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나라의 식품과 가공제품의 물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국내 가공식품, 배합사료 및 축산물, 외식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가공식품 소비자물가는 3.4~6.8%, 외식 소비자물가는 0.6~1.2%, 배합사료 생산자물가는 5.3~10.6%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국내 공급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곡물 자급률을 개선하고 곡물 비축량 확대 등을 통한 공급망 안정과 해외농업개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민간업체 지원을 통한 국제 곡물 유통시장 진입 등을 통해 위기 시 해외 곡물을 안정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대응 수단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025년 밀·콩 자급률 목표는 각각 5%, 33%로, 비축 목표는 3만t, 6만t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국제 곡물 가격 상승, 공급망 불안에 대한 국내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일 단위로 시장 동향 등을 점검하고 있으며 정책자금 금리 인하, 사료곡물 대체 원료 할당관세 등을 조치했다"며 "주요 곡물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이고 농지 보전 강화, 비축물량 및 시설 확대, 해외 공급망 확보 등 중장기적인 식량 안보 강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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