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군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공식 규정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국무부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정부는 러시아군 구성원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그간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와 관련해 증거를 수집·평가해 왔다.
블링컨 장관은 성명에서 "정당한 이유 없고 정당화할 수 없는 선택의 전쟁을 개시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죽음과 파괴를 야기한 가차없는 폭력을 불러일으켰다"라고 했다. 이어 러시아군의 아파트, 학교, 병원, 핵심 인프라 등 공격을 거론했다.
특히 성명에서는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 공격 및 대피소로 쓰이던 마리우폴 극장 공격 등이 거론됐다. 블링컨 장관은 마리우폴 극장 공격과 관련, "러시아어로 '어린이'를 뜻하는 단어가 하늘에서 볼 수 있게 큰 글자로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라고 개탄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무분별한 공격, 고의로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과 잔혹 행위에 관한 수많은 신뢰할 수 있는 보고를 봤다"라고 했다. 또 "푸틴의 군대는 체첸 그로즈니, 시리아 알레포에서도 같은 전술을 사용했다"라며 "국민의 의지를 꺾으려 도시 포격을 강화한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그들은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런 시도를 함으로써 세계에 다시금 충격을 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냉철하게 보여줬듯, 우크라이나 국민을 피와 눈물로 얼룩지게 했다"라고 했다. 이어 "러시아군이 잔혹한 공격을 계속하는 매일 무고한 민간인의 사망·부상은 늘고 있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지난 22일 자정까지 2500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은 현지 당국자를 인용, 마리우폴에서만 민간인 2400명이 죽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식 규정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칭한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은 해당 발언을 재차 거론한 뒤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군대에 의해 전쟁 범죄가 저질러져 왔다"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우리 평가는 공개·기밀로 접근 가능한 정보를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라며 "이 범죄에 관할권을 가진 법정은 특정한 사례에 관해 형사 유죄를 판단할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라고 했다. 이어 자국 수집 정보를 동맹 등과 공유하겠다고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에 앞서 지난 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민간인 사망 등 상황과 관련, "민간인이나 민간 목표물을 의도적으로 겨냥하는 건 전쟁범죄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실제 전쟁범죄 규정과 관련해 "자료와 증거를 모으고 내부 검토를 하고 있다"라고 했었다.
한편 러시아는 바이든 대통령의 '전범'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 중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 발언을 "용납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수사(修辭)"라고 대응했고, 러시아 외무부는 존 설리번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의 '전범' 발언이 "러시아와 미국 관계를 단절 직전으로 몰고 갔다"라고도 했었다. 이에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정말 어처구니없다(it's awfully rich)"라며 "(러시아는)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공습과 공격 등 대량 살육에 관여한 나라"라고 응수한 바 있다.
이날 미국 정부가 러시아군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공식 규정하면서 러시아 측에서의 추가 반응에도 이목이 쏠린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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