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 전 '이명박 전 대통령(MB) 사면론'을 먼저 띄우면서 문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윤 당선인이 MB사면의 명분으로 '국민 통합과 화합'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으로선 MB 사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은데다 반성 없는 MB를 사면하는데 대한 정치적 부담도 큰 상황이다. 비록 임기말이지만 적폐청산 깃발을 들고 정권을 잡은 문 대통령이 적폐청산 대상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을 임기 내 사면하는 것은 지지층과 진보 진영에 배신감과 실망감을 크게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사안이 다르다"며 사실상 선을 그어왔지만, 임기 말 현직 대통령이 당선인의 건의를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16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갖는다. 회동 테이블에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보상 확대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등 민생·경제 의제가 오를 예정이다. 아울러 북한의 신형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과 관련해 북한의 동향 등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논의도 오갈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관심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논의다. 윤 당선인 측은 회동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MB사면 건의'를 공식화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회동 날짜를 발표하고 "윤 당선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견지했다"며 윤 당선인의 사면 건의를 시사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이 회동을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이 전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여론이 호의적이라 보기 어려운 데다, 자칫 당내 계파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윤 당선인이 선거 기간 밝혀온 대로 직접 집권 후 사면권을 행사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 측이 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대외적으로 '국민 통합 정부'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집권 초 사면권 행사로 불거질 수 있는 여러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사면 요청을 발표하며 "이번 만남을 계기로 국민통합과 화합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 한다"고 밝혔다.
이목은 문 대통령에게 쏠린다. 여러 요건이 필요한 가석방과 달리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문 대통령 결단 시 이뤄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에서는 부정적 분위기가 감지돼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해 연말 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이 제외된 이유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4년 9개월을 수감됐고, 이 전 대통령은 780여일 수감됐다"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 정서도 좀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문 대통령이 사면 요건으로 밝힌 '국민 공감대'와 '통합'이란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다만 이번은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청하는 모양새로, 문 대통령이 사면을 단독 결정하는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당선인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태로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전향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동시에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운 윤 당선인의 첫 공식 요청을 수용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으로 부담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사면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를 거부해도 '발목 잡기'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회동에서 이 전 대통령 사면이 논의되는 계기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면도 다뤄질지 여부도 관심이다. 김 전 지사는 지난 2017년 19대 대선과 관련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 가담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여권을 중심으로 문 대통령 임기 중 김 전 지사 사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연말 특사에서 이 전 대통령이 제외된 것을 두고 '김 전 지사와의 동시 특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아마 (이번에) 같이 사면을 하리라 본다"며 "문 대통령 입장에서 김경수를 그냥 놔둘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김 전 지사에 대한 사면을 결단하는 것에는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사면과 함께 결단할시, '내 편 챙기기'라는 정치적 결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다른 여권 관계자는 "사면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라면서도 "김 전 지사의 경우 직전 선거 관련 혐의로 수감 중인 것을 고려할 때 내부에서도 사면권 행사가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배석자 없이 단독 회담을 진행하는 만큼, 윤 당선인이 비공개적으로 김 전 지사 사면까지 건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오는 5월8일 부처님오신날 계기로 한 특별사면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이 회동에서 사면 건의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고 최대한 결정 시기를 늦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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