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물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곡물 수입 차질 등의 영향으로 지금보다 더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당초 정부는 올해 상고하저의 물가 흐름을 전망했는데 예상보다 길게 이 여파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유가 100달러 육박… 가스·곡물 공급망 우려도

2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국내로 수입되는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95.84달러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24.3% 올랐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선물)와 서부텍사스원유(WTI·선물) 가격은 각각 97.93달러, 91.59달러로 26.0%, 21.8% 뛰었다.

브렌트유의 경우 2014년 9월 이후 처음으로 장중 100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90달러대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것도 7년여 만이다.

기름값은 서민들의 지갑 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휘발유(12.8%), 경유(16.5%), 자동차용 LPG(34.5%), 등유(25.7%) 등 석유류 가격은 16.4% 올랐다. 전체 물가 상승률(3.6%)에서 석유류의 기여도는 0.7%포인트(p)에 달한다.

이달 들어 급증한 국제유가가 반영되기 시작하면 물가 상승률이 4% 안팎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는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 중인데, 이는 2010년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18개월 연속 3%대 이상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약 10년 만이다.

실제로 2월 넷째 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 가격은 전주 대비 21.4원 오른 리터(ℓ)당 1739.8원으로 6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경유 판매 가격도 24.3원 상승한 1564.5원으로 집계됐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수급 여건이 빠듯해지면 국제유가는 더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으로 하루 5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교역량의 12%에 달하는 수준이다.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연)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대표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20년 기준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34.2%에 달한다. 러시아로부터의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대체 수요로 석유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국제유가 상승 압력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이는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가 우리나라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약 20%를 차지하는 유럽의 수요는 다른 대체 수입선을 찾을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의 원자재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이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영향이 걱정된다"며 "우리나라로 공급되던 천연가스는 유럽으로 분산될 것이고 이러면 단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곡물 가격 상승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소맥(밀)과 옥수수 수출량의 약 30%, 2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밀 수입액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비중은 각각 2.3%, 6.2%, 옥수수의 경우 4.8%, 1.8%로 집계됐다. 여기서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밀과 옥수수는 대부분 사료용 곡물로 분류된다.

이경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소맥 및 옥수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임을 고려하면 공급 차질로 인한 단기 가격 상승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며 "음식료업체의 원가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단기 영향 제한적이라는 정부… 5년 만에 물가장관회의 열기로

정부는 대(對) 러시아·우크라이나 교역 규모, 원자재·곡물 비축 물량 등을 감안할 때 단기·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은 장기 계약 비중이 높고, 정부 비축유도 106일분(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을 확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밀과 옥수수도 계약분까지 포함하면 각각 내년 2월, 7월분까지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도 했다.

당분간 수급에는 문제가 없어도 물가 상승까지 억제하기는 힘들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1%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2.0%)보다 1.1%p 높은 수준이다.

한은이 물가 상승률을 3%대까지 높여 잡은 것은 약 10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물가 전망치를 2.2%로 제시했는데 이 역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올해 평균 국제유가를 배럴당 73달러(두바이유 기준)로 가정하고 산출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얼마 전 확대간부회의에서 "물가가 거시경제 운용의 최대 애로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내수 품목과 수입 품목, 원자재와 가공품 등 주요 품목별로 수시 수급을 점검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통계청은 오는 3월4일 '2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같은 날 정부는 홍 부총리 주재로 물가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5년 만에 열기로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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