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방치와 허용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많은 아이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방치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비유하자면 아이가 뜨거운 물을 몸에 엎질렀을 때 부모라면 “네가 놀다가 네 실수로 다친 거니 네가 아파도 할 수 없어”라는 식으로는 반응하진 않을 것입니다. 분명 아이의 무지와 잘못으로 발생한 사건이지만 긴급한 순간이라면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모든 고난을 다 없애주지는 못해도 인간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지경까지 허용하시는 건 왜일까요? 하나님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신데 말이죠. 믿음이 굳건하지 않아서인지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들을 보면 하나님이 가혹하고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답변 1.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땅을 당신을 대신해서 다스리도록 청지기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는 그 소명에 충실해야만 자연적 인위적 재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문화명령의 뜻이며 또 그래서 인간에겐 문명을 선하게 발전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더러 자연을 정복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 환경과 자원과 재능만 주셨지 처음부터 고난이나 재앙이 생기지 않는 완전무결한 유토피아 같은 환경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이미 받은 이성과 의지로 최선을 다해서 거룩하게 정복하여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인간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유익과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아담의 경우도 에덴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관리했을 때에만 고난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굶주려 죽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그 문화명령에 충성하지 않는 탓입니다. 거의 모두가 참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의 욕심대로 살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부정부패로 타락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빠서 국민들의 복리향상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이 타락하여 당면하고 있는 비참한 상태를 설명한 로마서 1:18-32 대로 된 것입니다. 인간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지경까지 하나님이 허용하거나 방치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반면에 국민교육수준이 높고 정부가 복지정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나라는 믿음과 상관없이 그런 초보적인 비참한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린 대로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죄로 타락한 이후에도 본질적으로 선한 자질과 요소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무관하게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하나님과 연결해서 따질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고난은 인간 세상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일상사일 뿐입니다. 신자라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 일어나는 사고입니다. 심지어 기도를 열심히 해도 불완전한 이성과 부주의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뜨거운 물을 몸에 엎질렀을 때 부모라면 즉, 하나님이라면 “네가 놀다가 네 실수로 다친 거니 네가 아파도 할 수 없어”라는 식으로는 반응하진 않을 것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일단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부모의 반응을 말하는데 하나님도 사고가 일어난 후라면 당연히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먼저 아이가 실수로 엎지른 것은 아이의 행동반경 안에 뜨거운 물을 놓아두고 평소에 사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교육시키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 더 큽니다. 믿음 없이도 잘 교육시키고 아이가 다칠 환경을 만들지 않는 부모들이 더 많습니다. 말하자면 아이가 굶어죽는 것 같은 비참한 사고도 이 땅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청지기 명령에 인간들이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그 비극이 발생할 여건과 상황을 인간이 조성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그 일을 허락하거나 방치한 것은 아니라 연약한 본성이라 부주의했던 것뿐입니다. 허락이나 방치를 문제 삼는 것은 미리 그렇게 의도했을 때입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날 줄 알고도 아무 손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고난도 하나님이 인간을 다른 피조물로 결코 바꾸실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르기에 그분의 방치나 허락이라고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세상과 인생=고난의 바다”라는 등식은 마지막 날까지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잘못하여서 물을 엎질러도 그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시고(요일1:9), 그 전에 지혜를 구하면 넘치도록 주십니다(약1:5). 무엇보다 신자도 현실적 실력을 쌓아서 인생사를 자기 이성과 의지를 최고로 동원하여 고난을 미리 막아가며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정말로 순전하게 주님만 의지하면 주님이 큰 능력을 발휘해서 고난을 미리 막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신자가 잘못했어도 합력해서 선한 결과로 바꿔주십니다(롬8:28). 잘못을 범한 신자를 하나님은 절대로 네 잘못이니 네가 알아서 다 책임지라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자로 부름 받은 것이 신자입니다.(살전5:16-18).
나아가 하나님은 신자의 믿음의 성숙을 위해서 고난을 일부러 허락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큰 고난을 겪은 욥의 믿음이 결국에는 정금 같이 자랐고, 또 아브라함에게 기근을 두 번이나 겪게 해서 아내를 팔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결과는 더 선하게 되고 그의 믿음이 성숙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린아이가 기아로 죽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탐욕 때문이지만 신자더러 더더욱 이웃 사랑과 구제에 힘쓰라는 뜻입니다. 불신자에게는 그런 죄가 갖는 파괴적 본질 자체로 심판을 주신 것이며 나아가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당신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질문 2.
고난의 상황은 대부분 인간의 잘못인데 고난의 회복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로 고난의 상황을 만든 것처럼 고난의 회복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로 해결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왜 고난의 원인은 인간이고 회복은 (인간의 노력과 자유의지 보다는) 주님의 은총이라고 하는 걸까요? 인간은 자유의지로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인가요? 고난이 발생된 첫째 원인은 인간의 의지이지만 하나님이 허락해주셨기에 가능했다면 하나님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 이 때는 오직 인간만의 전적책임인 것처럼 말하는지요? 불손한 생각임을 알지만 역으로 따지자면 그렇지 않나 싶어서입니다.
답변 2.
고난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기에 그 회복도 당연히 인간의 자유의지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비유해보겠습니다.
신자가 중병에 걸리는 것은 평소에 불규칙적인 생활과 음식섭취의 불균형과 운동부족 등으로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스트레스를 영적으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본인의 잘못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위반한 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믿음과 무관하게 누구나 아는 건강 상식을 지키지 않은 것이며 자신이 무절제할 때부터 이러다 큰 병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일입니다. 귀찮고 게을러서 그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다 다시 정신 차리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음식조절을 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스트레스도 해결하고 의사의 치료를 받아서 그 병을 낫게 되면 당연히 본인의 이성과 의지에 의한 회복입니다.
그럼 또 적절한 치료로 완치하게 인도해준 의사에게 당연히 감사하게 됩니다. 나아가 신자 스스로 꾸준히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여건을 마련해 주고 또 훌륭한 의사를 만나서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의 은총으로 나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동에서 한 교회가 단기 선교여행을 갔다가 테러리스트에 납치 되었다가 한국 정부의 노력으로 풀려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이슬람 지역에선 언제든 그런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갔습니다. 자칫 순교도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출발했으며 선교 여행 내내 교인들이 안전하게 선교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기 전에 염려했던 바로 그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풀려난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 정부의 노력과 대가를 지불한 때문이고 믿음과 관계없는 인간의 의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테러리스트들이 혹시라도 생각을 바꾸지 말도록 또 석방협상이 순탄하게 이뤄져서 전원이 무사히 풀려나오길 교회는 정말로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태가 해결된 뒤에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감사하며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한국정부에 감사를 하지 않은 것도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질병이나 선교 중의 납치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까지는 하나님의 허락이나 방치와는 무관하며 신자들의 믿음과도 무관한 일입니다. 로마 시대의 극심한 박해도 하나님의 허락과 방치와 전혀 무관하며 포악한 세속의 황제들로 인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지 않습니까? 당시 신자들도 이미 그런 줄 알고 각오했습니다. 황제숭배에 도무지 동조할 수 없으니 순교도 담대히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그 결과를 두고 궁극적인 맥락에서 인류의 구속사를 진행시켜나가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주권과 섭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속)
2021/11/11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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