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탄생(The Nativity) 주제 중에서 미술사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성서화는 브르타뉴의 안느 대기도서(Great Hours of Anne of Brittany) 에 실린 채식삽화이다. 이 기도서는 프랑스 국왕 샤를8세와 루이12세의 왕비였던 안느 대공작 '용 기도서'이다.
프랑스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기도서는 1503~1508년경에 프랑스 중서부 투르(Tours) 지방에서 장 부르디숑(Jean Bourdichon 1447-1521)이 중심이 되어 제작하였다.
이 기도서는 특히 대기도서(Great Hours)로 불리면서 미술사학자들이 특별한 평가를 하는 것은 탁월한 예술성 때문이다.
첫째로 이 기도서는 두 권의 사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하나는 명상과 기도를 위한 영적인 책이며, 또 하나는 식물과 곤충과 작은 동물 등의 식물원과 자연 백과사전적 교회력이라는 점이다.
330여 종의 식물의 학명을 삽화 상단에 라틴어로 기록하고 실제 부르는 통상명칭은 하단에 프랑스어로 기록해 두었다.
둘째는 고가의 재료를 풍족하게 사용하여 원근법을 구사하고 사실주의적 초상 기법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476면이 채식삽화로 가득 차 있고 이 중 전면도판 만도 49면이 될 뿐만 아니라 교회력의 매월 달력에는 12궁(the signs of zodiac)을 표시 해 두었다는 점이다.
천재화가 장 부르디숑의 '예수탄생' 성서화를 살펴보자.
이 그림은 중세 유럽 채식사본화 중 가장 인상적인 야경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부르디숑은 예수탄생이 세계역사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이 그림에서 암시하려고 하였다.
세심하게 구조화된 건물을 중심으로 한 이 야경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기예수가 탄생한 마을 위에 밝게 떠있는 베들레헴의 별들의 광선은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 이 낡은 건물의 뚫어진 지붕을 통해 내부를 비추고 있다.
중세풍의 성지순례자 복장을 한 요셉이 들고 있는 랜턴에서 나오는 빛이 아기예수와 성모의 얼굴을 더욱 밝게 하며 후광효과까지 만들고 있다.
아기예수는 땅바닥에 눕혀 놓았는데 온 몸에서 밝은 빛을 발하고 있다.
뒤 쪽 창문을 통해 아기예수께 경배하는 네 사람의 목자들은 이 역사적 사건의 증인일 뿐만 아니라 그림 앞쪽에서 마주보는 황소와 나귀와 함께 이방인과 유대인이기독교로 융합하는 교회의 상징으로 배치한 것이다.
밤에 바위산을 배경으로 하고 구멍 난 지붕이 있는 예수탄생처의 모습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를 연상시킨다. 검은색으로 염색한 양피지에 금빛 테두리를 둘러서 그림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맨 아래 쪽 금빛 테두리에는 예수탄생 주제를 나타내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으며, 우리에게 한 아들을 주셨다' 는 전설을 라틴어로 적어 놓았다.
안느 왕비(1476-1514)는 브르타뉴 지방인 낭트에서 태어났는데 11세 때 아버지를 계승하여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북서부의 생 말로와 대항해시대의 최대 무역항이었던 낭트가 있는 지역이다. 지금도 프랑스인 중에서 브르타뉴인들은 켈트어 계통의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면서 고유한 문화와 자부심이 대단하다.
안느 왕비 시대에는 유럽의 두 강대국인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 왕가 사이에서 브르타뉴공국의 독자성을 지키려고 정략결혼의 제물이 된 여인이다.
1490년 합스부르크 왕가인 신성로마제국의 맥시밀리언 황제와 결혼(혹은 약혼) 까지 했으나 프랑스 국왕 샤를8세가 브르타뉴를 침공하여 강요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498년 샤를8세가 죽자 사위 신분으로 프랑스 국왕이 된 루이12세는 안느의 미모 때문인지 아니면 브르타뉴공국의 합병을 위한 정략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공주출신 왕비와 이혼하고 안느 여공작과 결혼하였다.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던 안느는 브르타뉴공국을 지키려고 애를 썼으나 그녀가 죽자프랑스 왕국에 합병되었다. 안느 왕비는 예술의 후원자였고 음악을 즐겼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녀의 일생이지만 그녀가 후원해 제작된 기도서는 후대의 우리에게 아름다운 성서화를 남겨주고 있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