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국방장관 '2+2회의'에서 북핵과 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이고 조율된 대북전략을 마련해 공조하겠다는 입장이 재확인됐다. 다만 미국이 북한과 중국을 정조준하면서 인도·태평양지역에서 한·미·일 3각 협력을 통한 공동 대응을 요구해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미국 외교·안보 장관 합동 접견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실현 의지를 다시금 내비쳤다. 그러나 제재·압박 중심의 북핵 정책을 기조로 외교 행보를 시작한 조 바이든 행정부와 사뭇 온도 차가 있었다는 점에서 향후 도출될 '한미 공동 포괄적 대북정책' 향배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합동 접견 자리에서 "한미가 함께 공동의 포괄적 대북전략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며 "동맹국 미국과 긴밀한 공조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잔여 임기 1년 동안 멈춰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최대한 속도감 있게 재개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싱가포르 선언을 기점으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고, 이를 통해 훼손된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 등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제5차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진행했다. 이는 지난 2016년 10월 이후 5년 만이었다.
양국은 한미 2+2회의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양국 장관들은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관련 유엔 안보리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했다"며 "한미 간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 하에 다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와 관련해 고위급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적시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회의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 일본 등과 대북정책 검토를 완성할 계획"이라며 "압박 옵션과 향후 외교적 옵션의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동맹에 대한 북한 미사일과 핵무기 위협을 줄이고,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용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굳건한 안보 기반의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며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장관의 방한에서 대북 접근법과 관련해 한미 간 눈높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게 됐다. 미국 측은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열린 자세로 동맹국인 한국과 계속해서 긴밀히 소통해나가겠다"는 원론적인 입장과 함께 대(對) 중국 포위망 구축과 한미 동맹 중요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 측은 중국에 대해 "적대적, 협력적, 경쟁적 관계라는 복잡성이 있다. 앞으로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도전과제들을 극복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하며 한국의 동참을 직간접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블링컨 장관은 전날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이 민감해하는 북한 내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 기조를 높이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은 자국민에 대한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학대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 외교·안보 장관 합동 접견 자리에서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도 이 같은 미국 측의 강경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70년 동반자로서 공동의 도전에 함께 대처해나갈 것이며 특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빈틈없이 공조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이 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적대시 정책 철회 이전에 대화 테이블에 나설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상의 실현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평가다. 북미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수립 완성 시점에 서로 긴장 수위를 높이면서 문 대통령의 셈법도 복잡하게 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이날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의 대북 접촉 시도를 소개하며 "우리는 또다시 미국의 시간벌이 놀음에 응부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중 전선 구축을 최우선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후순위로 미루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완성단계에서 나온 북한의 첫 반응이다. 속도감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기대하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 적잖은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번 접견 성과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동력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며 "(한미는) 북핵 문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양측은) 남북관계 중요성에 공감하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선순환 관계임을 공감했다"며 "한반도 비핵화에서 남북관계가 기여할 수 있는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측의) 대북 정책 검토가 수주 내로 완료될 것으로 생각되는 시점에서 북핵 문제가 시급한 사안이라는 데 공감하며 공동으로 대처할 의지를 재확인하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고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이 한·미·일 삼각공조를 위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경우 설득과 조율대상이 늘어나게 되고, 남북미 3국을 중심으로 추진돼 온 기존 한반도 평화구상의 속도감 있는 전개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한일 관계가 한반도 동북아 평화안정과 번영에 매우 중요하고 한미일 협력에도 굳건한 토대가 되는 만큼 양국 관계의 복원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 또한 이러한 맥락 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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