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흔히들 교회에서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래도 널 사랑하심' 등의 말을 인용하며 위로를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지금 제가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말씀을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보며 하나님이 후회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제가 하나님의 실패작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사실 저는 9살 때부터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할 만큼 기질이 우울하고 취약하며 타인의 말에 예민한 아이였어요. 그래서 제가 취업 후 갈등상황을 만났을 때 합리적인 생각을 못하고 자살을 선택할거라고 거의 확신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죠. 저는 불신하고 있는 거에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악한 생각이니 창 6:5과 저의 상황이 다를 게 없어요. 그리고 다음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보며 '후회'를 하실 줄 아는 분이에요. 분명 저를 보며 후회하실 거 같아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답변]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갖는 생각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뜯어보면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살기가 빠듯해지고 경쟁이 심해져서 생존마저 염려해야 할 판국인지라 삶을 개척해나가야 할 젊은 층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 비하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최근에는 정서적으로도 너무 메말라져가서 우울증에 많이 걸리고 심지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서 크게 염려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특별히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잘못된 상황을 접하면 자살을 선택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너무 현실이 힘들어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라면 몰라도 미리부터 또는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떠올려선 절대 안 됩니다. 성경적으로 가장 큰 죄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후회한 적이 결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창1:31) 그런 마음은 지금까지도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신실(信實)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면에서 하나 달라지지 않고 동일하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믿을만한’, ‘약속이나 맹세를 성실히 지키는’, ‘원본과 똑같은’, ‘정확한’ 등의 뜻을 지닌 ‘faithful’로 번역했습니다. 스스로 자존하시고 모든 일을 당신의 의지대로 행하실 수 있기에 그러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창조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마련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창조 자체가 인간을 목적으로 한 셈이며 또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을 대신해서 이 땅을 다스릴 청지기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창1:28) 그 직분은 영원한 것이므로 그분은 인간을 항상 사랑하시고 그 직분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길 당신께서 더 원하십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성경에 창6:5와 같은 문구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당신을 낮추어서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고 심오하고 신묘하기에 당신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면 인간이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잠시도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말하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실제로 후회하신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인간의 죄악에 대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애통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비유컨대 인간 엄마도 종종 “내가 너를 낳고 먹은 미역국이 아깝다.”고 즉, 너를 낳은 것을 후회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마의 진의(眞意)는 사랑하는 자식이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는 뜻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기 본문은 노아 홍수로 전 인류를 심판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 세대의 인간의 죄악은 정말로 극심했습니다. 예컨대 라멕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인 후에 가인보다 칠십칠 배의 벌을 받아도 좋다고 큰소리쳤습니다.(창4:24)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무리 큰 벌을 주어도 눈도 깜빡 않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더라면 노아를 통해 경고를 주실 것도 없고 노아 가족도 살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도 결코 의인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아 때의 죄악상은 전 인류를 심판할 만큼 극심했고 또 그래서 성경은 이 말씀에 비추어서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렘17:9-10, 마12:34-35, 15:18-19, 막7:21, 눅6:45)
구약성경에는 이런, 아니 이보다 더 심한 표현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아비 야곱이 유언을 하면서 아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셈인데도 그러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특정한 시간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역사했고 성경을 접할 수 없었기에 아무래도 알기 쉽도록 가시적 사건을 통해서 직통적인 계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조금만 잘못하면 벌을 주시는 무서운 하나님 같으나 구약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이 심판 받은 첫째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거나 당신을 대놓고 거역한 죄 때문이지 일반적인 윤리적 죄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심판을 해놓고도 때가 되면 반드시 용서해주셨습니다. 인간은 끝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나 하나님은 끝없이 용서해주셨다는 것이 구약이 말하는 주제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완성되기 전이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통치원리에 대해서 아주 무지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7,18) 하나님의 계시 자체도 아직은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고 드러내봐야 당시의 모든 여건상 사람들이 제대로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기록은 반드시 신약성경에 비추어서 해석 판단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성경을 해석하라.
그럼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말합니까? 가장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본체이신 당신께서 죽기까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십자가의 첫째가는 뜻입니다. 인간이 비록 하나님께 실망을 안겨드려서 그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지라도 그분의 인간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는 법도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롬5:1-8을 꼭 다시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9,10)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도 동일했습니다. 구약성경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래서 앞에서 제가 그분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신실하신 분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요컨대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한 구절의 문자적인 의미에 묶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성경 해석에서 가장 금기시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반드시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에 드러난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에 비추어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후에는 체계적인 교리, 그중에서도 구원론은 반드시 정확하게 배워야 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믿은 신자에겐 성령이 내주하셔서 모든 선한 것으로 인도하시고 설령 신자가 잘못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십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탈진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간구해주시기까지 하며 범사를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십니다.(롬8:26-28)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바뀐 자신의 소속 신분 지위 은혜 특권 등에 대해서 정확히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자님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닐 앤더슨이 저작한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 자유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유화자 옮김, 죠이선교회 발간)의 세 권입니다. 최소한 첫 번째 책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라도 꼭 읽어보십시오.
우울증은 사탄이 가장 좋아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고 인간 부모님을 대입해보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신자가 비록 죄를 지어도 결코 미워하지 않고 어서 빨리 회개하고 바르게 서기만을 원하십니다. 아무리 골치를 썩이는 자식이라도 부모는 절대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애틋해서 기죽지 않게 격려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도와주고 기도해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고백하고 범사에 자기에게 맡기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신자에게서 가장 실망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절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장 마음 아파하십니다. 스스로 자살하겠다는 것은, 자식이 그러면 부모의 가슴에 평생토록 대못을 박는 것이므로, 그분을 가장 실망시키다 못해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서 신자가 자존감의 결핍이나 죄책감에 빠져서 넘어져 있는 것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거짓의 아비요 참소하는 자인 사탄은 신자를 어떻게든 실망에 빠지게해서 주저앉게 만듭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이 너에게 실망하고 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다, 그렇게 살고선 하나님의 복을 받을 꿈도 꾸지 말라” 등등의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전부가 성경에는 전혀 없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를 세상에 오직 그 한 사람만 있는 양 간주하고 범사를 인도하십니다.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잘 아시고 평생에 걸친 당신만의 거룩한 계획 가운데로 이끌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의 다윗의 고백을 꼭 읽어보십시오. 그런데 신자가 자책과 죄책으로 넘어져 있고 나아가 자살까지 행하려 하면 그 계획은 시행도 못해보고 무산되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한 번뿐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고 신령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인생 전체를 길게 보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실망할 일이 생기면 잘못된 생각내지 시도를 할 것이라는 말처럼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 한 번의 일이 어떻게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고귀한 인생 전체와 맞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겪는 실패, 잘못, 죄악, 고난들보다 더 강하게 더 많이 겪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하나님이 더 큰 은혜로 채워주셔서 지금 70살까지 이르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세월들이 현실적으로는 고통스럽긴 했지만 정말 남들이 알지 못하는 큰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실은 다른 사람들은 질문자님의 상태나 일에 대해서 전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인생을 꾸려가기에도 바쁘고 자신들의 문제와 고난으로 허덕거립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신자의 편입니다. 그분과 일대일로 친밀하게 교제 동행하면 그분이 나머지 모든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억울한 일들 다 풀어주고, 죄와 시험에 빠질 기회도 막아주시고, 고난을 이겨낼 위로와 힘을 주실 뿐 아니라 점점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과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도록 바꿔주십니다. 나아가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의 선함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인도해주십니다. 신자는 예수님 안에서 범사에 넉넉히 승리하여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최소한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껏 그랬듯이 그런 예민함이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므로 반드시 전문가에게 꾸준히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아보십시오. 무엇보다 운동이나 취미활동에 힘을 기울이십시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도록 노력하시고 무엇이든 스스로 성취했던 일들만 기억하십시오. 먼 장래의 소망 찬 계획을 세워서 기도하시고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 실현해 나가십시오.
2021/2/16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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