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교회는 일년 중 가장 즐거운 축제인 대림절과 성탄절, 그리고 주현절을 준비한다.
대림절(Avent)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며 12월25일 성탄절(Christmas)은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이다. 주현절(Epiphany)은 대체로 1월 초인데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방문한 것을 기념함과 아울러 주님의 오심을 전하는 절기이다.
성서화의 도상학에서 예수탄생 주제의 싸이클은 언제나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탄생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카스티야 왕국의 미친 여왕 요안나 1세의 기도서(The Hours of Joanna I of Castile, Joanna the Mad)는 1500년 경, 플랑드르의 유명한 채식화가인 제라드 호렌바우트 (Gerard Horenbout, c.1465-1541)가 그렸는데 일부 삽화는 알렉산더(Alexander)와 시몬 베닝(Simon Bening)이 함께 참여하였다.
이 기도서는 482페이지의 아름다운 채식화로 꾸며져 있으며 전면도판으로 된 삽화만 해도 75매나 된다.
이 기도서의 전면도판의 하나인 '목자들에게 예수탄생을 알림(Announcement to the shepherds)'을 그린 이 성서화는 크리스마스와 주현절을 상징하는 첫 번째 테마이다.
하늘에는 황금색 후광을 두른 천사가 나타나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메시아인 예수가 탄생했다고 외치고 있다. 천사가 전한 이 기쁜 소식은 이 성서화 좌측과 아랫부분의 붉은 천에 황금 글씨로 쓰여 있는데 'Groria in excelsis deo' 즉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영광' 이라는 내용이다.
베들레헴 근처의 산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한 밤 중에 나타난 천사 때문에 놀라고 무서워한다. 그림에서는 목자가 5명 등장하는데 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놀라움과 감격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멀리 보이는 두 목자는 놀라서 무릎을 꿇고 양손은 천사를 향해 높이 들고 있다. 가운데 서있는 목자는 영광스러운 빛이 그의 몸을 감싸는데 놀라서 모자를 들고 빛을 가리고 있다. 앞 줄 오른쪽의 목자는 손으로 눈을 일부 가린 채 천사를 쳐다보고 있으며, 왼쪽의 목자는 갑자기 나타난 천사 때문에 넋을 잃고 주저앉고 있다
많은 양떼가 보이는 이 그림의 상단 우측에는 정적에 싸인 도시가 보이는데 화가는 의도적으로 동양풍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예수탄생 소식을 전하는 테마는 5세기 경 부터 그려 온 전례에 따랐으며 이후 비잔틴 미술의 예수탄생화에 계승되고 있다.
이 기도서를 그린 호렌바우트는 1487년 플랑드르의 겐트(Ghent)에서 채식화가 길드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의 아들 루카스(Lucas)와 딸 수산나(Susanna)와 함께 가족공방을 운영하다가 60세 무렵에는 영국으로 가서 헨리 8세를 위해 일하였다.
그런데 그가 스페인에 있는 요안나 1세 여왕의 기도서를 제작한 경위는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은 그 당시 저지대 국가인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북유럽 플랑드르 지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있던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스티야 왕국의 상속자인 요안나 공주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미남 필립 왕자(Philip the Handsome)'와 결혼하여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으나 잘 생긴 필립의 여성편력으로 신앙심이 깊었던 요안나 공주는 분노와 질투로 정신병자가 되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필립이 죽자 그녀의 우울증이 더욱 깊어가 '미친 요안나(Joanna the Mad)'라는 별칭을 얻게 된 불행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모친이 죽자 그녀가 카스티야 왕국의 요안나 1세 여왕이 되어 아버지에게 섭정을 맡기기도 하였다.
정신병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요안나와 필립 사이에는 2남 4녀가 태어났고 맏아들인 카를로스는 그 유명한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이기도 하다.
그 당시 스페인은 카톨릭 전성기였고, 신대륙의 보화를 약탈해 온 보물들로 부를 쌓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한 그 위상에 걸맞게 스페인 왕실용 기도서들은 비싼 물감을 풍족하게 사용하고 세련된 표현으로 품위가 돋보이는 기도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시설국장(1989~1994),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통합) 장로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