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2년 넘게 억류됐다 풀려났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선교사가 북한을 상대로 미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VOA가 보도했다. 배 선교사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고, "북한 당국이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법원기록 시스템에 따르면 배 선교사는 지난 17일 미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억류기간 중 겪은 고의적인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피해에 대해 북한 당국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은 배 선교사를 비롯해 배 선교사의 부인과 여동생,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가 원고에 이름을 올렸고, 북한 정권과 함께 리선권 외무상을 북한 정권을 대표하는 피소자로 등재했다.
배 선교사는 지난 2012년 북한에서 종교활동을 통한 정권전복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노동교화형 15년 형을 선고받았었다. 이후 2014년 11월 석방돼, 현재 한국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단체를 이끌고 있다.
소장에 따르면 배 선교사는 체포 직후 난방이 없는 방에 갇힌 상태로 조사를 받았으며, 이 때 극소량의 식사를 제공받고 하루 2~3시간만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하루 종일 서 있는 상태에서 엄격한 심문을 받거나, 수 시간 동안 무릎을 꿇는 등의 고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배 선교사는 이 기간 북한 당국자들이 목을 베어버린 뒤 땅에 묻겠다는 등의 협박을 해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다는 허위 자백 문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신이 혐의를 번복하려 할 때마다 총살형을 위협했다고 했다.
배 선교사는 15년 교화형 선고 뒤 교화소로 보내져 일주일에 6일, 매일 10시간씩 돌을 옮기고 삽으로 구멍을 파며, 석탄을 깨는 등의 극심한 중노동에 동원됐다고 밝혔다. 특히 억류돼 있던 735일 동안 다른 수감자들과 만날 수 없었고, 2천200여 끼의 식사를 혼자 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배 선교사는 억류 기간 동안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못해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을 손해배상의 근거로 제시했다.
배 선교사는 소장에서 자신의 소송이 테러지원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외국주권면제법(FSIA)’ 조항을 근거로 했다고 명시했다. 또 'FSIA'는 소송 당사자 혹은 실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미국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자신과 가족들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번 소송은 워싱턴 DC 연방법원의 에밋 G. 설리번 판사에게 배정됐다. 과거 북한 정권을 상대로 한 소송 사례로 볼 때 최종 판결까지는 적어도 1년에서 3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한 당국이 소송에 응답하지 않을 경우 피고의 변론 없이 최종 결론에 이르는 ‘궐석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한편 VOA는 북한 당국은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들이 제기한 소송이나,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이듬해 평양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김동식 목사의 가족들이 제기한 소송,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등의 소송 등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 법원은 북한이 웜비어의 가족에게 약 5억 달러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으며, 김 목사의 가족들에게도 3억3천만 달러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푸에블로호 승조원 관련 소송은 북한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상태로, 원고의 배상금 산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기록 시스템에 따르면 배 씨의 변호인은 20일 이번 소장에 대한 소환장을 미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았다.
리선권 외무상을 수신인으로 한 소환장에는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과 함께 앞으로 60일 내에 원고의 주장에 대해 응답을 하지 않을 경우 ‘궐석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변호인은 해당 소환장을 조만간 북한 측에 보낼 예정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