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불법 경영승계 의혹 관련 1년7개월 동안 수사를 벌인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부회장 측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법원이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고 밝히면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이 인정받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3명의 자본시장법(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위반 등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지난 2018년 2회에 걸쳐 이뤄진 고발로 이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분식회계 의혹이 결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 산정과 연관돼 있다고 의심하고 수사를 확대해나갔다.
특히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시세조종'을 포함한 10여건의 부정거래가 있었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 부회장이 부정거래 등을 인지하고 지시 및 관여했다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삼성 전·현직 관계자를 여러 차례 소환했고, 이 부회장을 지난달 26일과 29일 소환조사했다. 이후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판단을 받겠다고 나선 지 이틀 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이날 법원은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다만 기각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면서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에 대해서도 향후 재판 과정에서 따질 문제로 판단한 만큼, 이 부회장 측 항변이 받아들여진 결과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법원이 기본적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재판에서 다툴 필요가 있다고 밝힌 만큼, 현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뿐 검찰 수사의 정당성 자체가 부정당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아울러 증거가 충분히 수집된 상태인 만큼 불구속 재판 원칙에 따라 향후 공판 과정에서 책임 유무를 가려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평가도 더해진다.
이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1년7개월이라는 장기간 수사 끝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향후 수사는 일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를 중심으로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 여론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날 영장 기각 후 검찰 관계자는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는 11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여부를 결정하는 부의심의위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에, 검찰은 심의위 결과를 지켜본 뒤 향후 수사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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