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 5월 기독교 성윤리와 신앙
총신대 이상원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한국성과학연구협회는 구의동 은혜와사랑의교회에서 ‘기독교 성윤리와 신앙’을 주제로 이상원 총신대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했다. 18일 오후 6시였다. 결혼 그리고 성관계, 이혼,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이 교수는 발제했다.

1. 결혼과 성(性)

교회 내에서 성(性)을 두고 암묵적 침묵이 흐르는 현실 상황에서, 이상원 교수는 “어거스틴의 신학적 영향 때문”이라 진단했다. 그는 “카톨릭 교회의 독신 제도는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마도 그는 “어거스틴의 이원론적 사상에 기인 한다”고 유추했다. 이원론이란 영혼과 육체를 나누어 영혼은 성스럽고, 육체는 불결하다는 플라톤 사상이다. 이원론에 영향 받은 어거스틴 탓에 카톨릭과 일부 개신교계는 성을 터부시(taboo)하는 경향이 뿌리내린 것이다.

이에 이 교수는 “어거스틴의 젊은 시절은 성 중독의 극치였다”며 “회심한 후, 그에게 있어 성관계는 ‘죄’라는 나쁜 이미지로만 각인됐다”고 밝혔다. 재차 그는 어거스틴을 놓고 “에덴 타락 이후, 성욕이 극대화되는 오르가슴 자체를 죄로 보았다”며 “성관계는 출산을 위한 수단이어야 함”을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목표가 달성됐을 때, ‘폴짝 폴짝’ 뛰어오른 기쁨의 감정”도 “어거스틴은 죄악시 했다”고 지적했다. 비단 이런 기쁨의 누림은 목표 달성뿐만이 아닐 터.

이 교수는 “성관계시 발현되는 희열은 인격성의 발현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인격성이란, “남·여 간 친밀감이 깊어질수록 배타성을 띄기 마련”이며 동시에 “내밀한 감정을 공유할 때 증폭되는 희열”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결혼 제도는 제 3자가 끼어들 수 없는 배타적 관계”라며 “타인이 끼어들 때, 질투심을 극렬하게 느끼는 건 인격성이라는 반증임”을 단언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인격적 친밀감의 극치”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은 결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 하신다”면서 “결혼 안에서 누리는 성관계도 마찬가지로, 깊은 친밀감과 인격성에 기초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성관계가 은밀하고, 배타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오르가슴에 도달 한다”며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합법적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그는 전도서 9:9을 빌려 “세상은 헛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밝히며, “하나는 수고해서 먹는 즐거움,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배필과 누리는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배필을 품에 안아야 할 때도 있고, 안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을 분명히 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도서 9:9)

즉 그는 “아내와 함께 있을 때는 성(性)을 흡족히 누리면 된다”며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배, 경건의 시간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누릴 것”을 강조했다. 하여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배필과의 관계는 모순이 아닌 상호조화”라고 했다. 다만 그는 “인격성안에서 구현되지 않은 성은 타락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여기서 그는 “인격적 성관계란 에로스에 기초하지만, 아가페적 요소가 이를 완성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에로스는 철학적 태도로, 자기만족적 특성이다. 따라서 자기만족을 위해 성취하는 모든 행위를 에로스라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남·여 관계는 동정심, 은혜로 성립되는 게 아니”라며 “내가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껴야 성립되는 것”이라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의 외모와 상관없이, 내 마음이 상대방 매력에 동하는 순간”이 “남·여 관계가 시작되는 에로스의 순간”이라고 밝혔다.

커플

반면 그는 “건강한 성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아가페”라며 “성 관계는 상호 쾌락적이기에,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필수”라고 역설했다. 예로 그는 “남자는 성감이 빠르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며 “마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분위기가 뒷받침 돼야 몸이 열리기 시작 한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성관계시 남자의 태도가 조급하고 자기만족적이라면, 여자에게는 불쾌감 및 통증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10분 만에 성욕만 채우려는 남자로 인해, 여자는 매 번이 공포의 순간일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하여 그는 “부부 관계는 파탄날 수 있다”며 “남자가 여성의 입장에 맞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만족을 주기 위한 헌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여자가 황홀경에 빠져들도록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해, 차 한 잔 마시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아가페적 헌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도, 그는 “성관계가 중간에 실패할 수 있다”며 “이 마저도 서로가 인격적으로 보듬어 주는 게 바로 아가페 사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담 타락 이전, 원래 성욕 안에는 아가페를 함유하고 있다”며 “타락 이후 아가페 요소가 상실돼, 성욕이 망가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건강한 기독교 성윤리는 바로 아가페의 회복에 있다”며 “성관계가 서툴러도, 아가페로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데서 회복이 시작 된다”고 역설했다.

논의를 확장해, 이 교수는 아담과 하와 선악과 사건이후, 그들이 성기를 나뭇잎으로 가린 것의 함의를 설명했다. 그는 “상대방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성관계로 발현 된다”며 “선악과 따먹고 난 후, 그들은 서로 정죄하며 마음의 소통이 깨져 버렸다”고 했다. 이어 그는 “아담과 하와 간 마음의 교감이 더 이상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잎으로 각자의 성기를 가린 것”이라 덧붙였다. 때문에 그는 "사랑의 교감이 성관계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성관계와 결혼이 불가분’인 만큼 “완전한 존재인 남·여가 서로를 아가페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사랑”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플라톤 개념처럼 남·여는 각각 불완전한 존재가 만나,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은 완전한 남·녀 각각을 창조하시며, 아가페를 통해 완전한 결합을 이룰 것을 원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여자는 남자의 지도에 따르고, 남자는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성경적 남·여 관계를 제시했다. 이는 “위계질서가 아니”라며 “하나님이 남자·여자에게 부여한 기능적 차이일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특히 그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개념은 지배하는 개념이 아니”라며 “그 머리는 면류관, 섬김의 의미로서 따뜻한 사랑”이라고 역설했다. 마치 그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낮아지시고 섬기셨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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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성애

그는 동성애 찬성론자들 논리를 비판하며 논의를 전개시켰다. 그는 “동성애 찬성론자들은 모세 율법을 의식법으로 생각해, 신약시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여기서 의식법이란 이스라엘 당대 시대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반면 도덕법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닌다는 걸 뜻한다. 그는 동성애 찬성론자 주장에 대해 “모세 율법에서 동성애를 위배하는 것은 도덕법에 의거해, 곧바로 형사 처벌에 들어갔다”고 반론했다. 하여 그는 “성경에서 동성애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윤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자주 왜곡하는 에스겔 16:49-50절 해석을 반박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에스겔 16:49-50)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은 죄’ 다음에 히브리 접속사 ‘그리고’가 나온다”며 “또 한 가지 죄인 ‘거만하여 가증한 일’이 뒤 따라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단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은 죄 만은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명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레위기 18장 22절을 빌려 “‘가증한’이라는 형용사는 동성 간 성교를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됐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그는 ‘그리고’ 접속사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은 것”과 더불어 “동성 간 성관계는 가증한 죄임을 분리시켜 선언한 셈“이라 강조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위기 18:22)

더불어 그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동성애였다고 주장하며, 성경은 동성애를 긍정한다는 또 다른 퀴어 신학자들의 논거를 반박했다. 그는 “사무엘 18:3절에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표현을 남성 간 동성애, 4절에 ‘겉옷을 벗었다’는 표현을 성관계를 위해 옷을 벗은 것으로 표현했다”고 진술했다. 또 그는 “사무엘상 20:41에 ‘피차 입 맞추고 같이 울되’라는 표현을 성애시의 입맞춤으로 해석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그는 “다윗과 요나단이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말은 아가페 사랑에 근거한 친밀한 우정”이라며 “겉옷을 벗어 준 것은 우정의 징표이며, 입맞춤은 당시 일상적 인사방법”이라 반박했다.

또 그는 로마서 1:26절을 두고 “순리와 역리는 사회학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라며 “동성애와 이성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가능성을 인정해 주는 본문”이라는 퀴어 신학자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그는 “로마서 1장의 전체 구도는 유대인 및 이방인이 하나님 앞에서의 죄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인간 죄적 실존을 말하는 맥락”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때문에 그는 “순리와 역리를 시대적 맥락에 따라, 동성애와 이성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유동적 개념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순리와 역리는 사회학적 개념이 아니”라며 “생물학적 성질서로, ‘남자와 여자가 성교를 갖는 것’이 순리, ‘동성끼리 성교를 갖는 것’은 역리”라고 설명했다.

성과연 5월 기독교 성윤리와 신앙
총신대 이상원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3. 이혼

이 교수는 “결혼은 하나님의 질서로, 평생 지속되는 관계”라며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닌 한 결혼관계는 깨져서는 안 됨”을 지적했다. 몇 가지를 제시했다. ▲배우자의 죽음 ▲배우자의 음행(마19:9) ▲신앙의 차이(고전7:12) ▲배우자의 동성애나 상습적 폭력이다. 특히 그는 배우자의 음행을 놓고, “구약시대는 음행하면 바로 사형에 처해, 결혼은 자동적으로 깨졌다”며 “율법으로 간음을 이혼사유로 따로 명시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신약에 들어서, 그는 “예수가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음행에 대한 형사 처벌은 끝났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마 19:9을 통해, 합법적 이혼 허용사유로 간음을 제시하셨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은 상대방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같이 살 것을 원하셨다”고 밝히며, 그럼에도 “예수는 차악으로 법적 장치를 마련해, 이혼사유에 간음을 추가하셨다”고 밝혔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

뿐만 아니라, 그는 고린도 전서 7:12에 나온 신앙의 차이도 설명했다. 그는 “배우자가 하나님도 싫고 기독교 교리에 동의하지 않아도, 같이 살기 원하면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며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보편질서로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구속”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상대방을 끝까지 안고 갈 것”을 제시하며, 반면 “상대방이 먼저 신앙의 차이를 말하며 이혼을 제시하면, 그때 가서 이혼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신명기 24:1-4절의 이혼과 재혼에 가르침도 덧붙였다. 그는 “이혼사유로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 되는 일을 발견하는 경우”라며 “지극히 남성 중심적으로 유대 사회가 악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즉 그는 “단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아내는 소박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그는 “당시 유대사회는 여성이 이혼당하면, 거리의 매춘부가 될 만큼 생계유지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내어보낼 때 증서를 써주는 것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란 증명서”라며 “남편의 횡포로 박탈당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소한 법적 장치”라고 진술했다.

물론 그는 “남편의 죄가 묵과되는 것은 아니”라며 “여전히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는 증서를 통해 처가 집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재혼도 가능했다”며 “하나님이 남편의 횡포로부터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하나님은 버린 아내를 다시 맞아들이려는 첫째 남편의 재재혼은 엄격히 금지하셨다”고 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신명기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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