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3.1운동 100주년 기념, 3.1운동과 통일 공개포럼이 25일 오후 2시부터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통일한국세움재단, 국회의원 김진표 의원실 등이 주최하고, '3.1운동과 통일포럼'이 주관했다.
첫 번째 강연자로 올해 99살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나섰다. "윤동주 시인과 동급생"이라 밝힌 그는 “3.1운동이 남긴 역사적 유산은 바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1운동 이후 ‘교회가 곧 교실’일 정도로, 많은 기독 사립학교들이 창립됐다”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당시 언론사들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국민 계몽 운동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유로, 그는 자신의 일본 유학 경험을 빌려, “일본 사람들이 근면했기 때문에, 게을렀던 조선 사람들이 그렇게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쓴물 삼키며 인정했다”고 술회했다. 때문에 그는 “나와 같은 많은 조선 국민들은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원동력임을 생각했다”며 “교육을 통해 절대 빈곤에서 탈출함으로 경제 문제 해결을 염원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그는 “이런 교육으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 소득 3만 불을 앞두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법치 국가 단계로서, 선진 국가 형태로 나아가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못 박았다. 특히 그는 “권력 및 군대를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지배했던, 권위주의 국가 시절은 김영삼 정부를 기점으로 종언했다”며 “다만 법의 지배력이 아닌 시민적 질서 사회로 운영되는 선진국가로 발전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정치가 스스로의 목적을 올바르게 세워야 함”을 주문했다.
정치의 목적을 놓고, 그는 “일차적으로 경제 문제 해결이 목적이고, 이차적으로 사회의 민주화”라며 “정치는 그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게다가 그는 “정치는 지배기관이 아닌 국민을 잘 살게 해주는 봉사 기관일 뿐”이라며 “선진 국가는 바로 법의 지배력이 아닌 시민적 자발성에 의해 사회 질서로 운영 된다”고 재차 설명했다. 일례로 그는 “캐나다와 스위스가 그러한 예”라고 덧붙였다.
사회 질서로 운영되는 선진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린 무얼 배워야 할까? 그는 “정치 이념의 갈등 해소가 급선무”라고 진단하며, “첫째로 정권욕에 빠져 애국심을 상실하면 안 되며, 둘째 냉전 체제 적 정치이념의 싸움을 그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3,1운동은 애국심 하나로 기독교와 천도교 등 종교와 이념을 아우른 시민 혁명”이라며 “이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현재 남한이든 북한이든 정권욕에 빠져, 민족과 국가를 위해 양보할 줄 아는 정신이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냉전 체제의 정치 갈등은 ‘보수 혹은 진보’ 하나만 남기 위해 싸우는 전쟁 이었다”며 “이는 20세기 냉전의 갈등이며, 대한민국은 현재 여기에 머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그는 “선진 국가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하는 열린사회”라며 “결국 물음은 ‘보수냐, 진보냐’가 아닌, ‘열린사회인가, 폐쇄 사회인가’를 되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폐쇄사회는 보수 혹은 진보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함을 강요 한다”며 “열린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하는지를 묻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여, 그는 “내게 누군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묻는다면, 나는 ’열린 보수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반면 그는 ”아무리 진보라도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폐쇄성에 갇힌다면, 이는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진보 혹은 보수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게 아닌, 열린사회 혹은 닫힌 사회로 가는지 먼저 기준을 세워 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열린사회의 일례로, 그는 미국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은 다원사회로, 종교, 인종, 국적을 뛰어넘어 같이 사는 국가 시스템을 창출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이런 열린사회는 시민적 자발성에 의해 질서 사회로 운영 된다“며 ”질서 사회는 열린사회로 향해 간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사회에서 현재 기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로, 교리에 매몰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3.1운동 때 기독교는 교리보다 진리를 알려줬다”며 “예수는 진리를 줬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100-200년 지난 후, 한국은 국력의 한계로 정치·군사 강국은 되지 못할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문화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우리가 으뜸이 될 수 있는 영역은 바로 문화”라며 “동아시아에서 한글 문화권이라는 독창적 정신문화를 지니고 있는 강점”을 잘 살릴 것을 당부했다. 또 그는 “정신이 앞서가면 경제는 뒤 따라 오는 것”이라며 “현재 러시아의 후퇴는 바로 공산 문화의 잔재 때문”이라며,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채 강연을 마무리 했다.
뒤 따라 국사학자인 윤경로 前 한성대 총장이 강연을 전했다. 그는 “당시 3.1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난 까닭은 고종 황제가 당해 1월에 독살 당했을 가능성 때문”이라며 “당시 민심은 일제의 폭압적 통치술로 인해 흉흉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는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역사의 주인은 조선 재민(在民)이 아닌, 조선 통감부였다”며 “그 앞서 대한제국의 시기였기에, 국권과 주권은 오로지 황제에게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인해, 그는 “상해 임정 수립이 촉발됐으며, 상해 임시정부 헌법은 주권재민(主權在民)국가를 적시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3.1운동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상해 임정 수립의 도화선이 됐다면 그건 혁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 역사관이 스스로를 낮춰 본 것”이라 비판하며, “‘3.1운동’을 ‘3.1혁명’으로 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목에서 윤경로 교수는 “결과론적으로 3.1운동이 독립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해도, 역사적 관점은 ‘실패냐, 성공이냐‘가 아닌, 그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짚어냈는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만일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짚어내면 그건 결과에 상관없이 ’혁명‘“이라고 그는 전했다.
가령, 그는 동학 혁명 운동을 예로 들며, “동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1890년대 후방 반외세, 반봉건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동시에 짚어내려 했던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당시 역사적 과제는 일본이라는 외세의 침략을 주체적으로 막아내는 것”과 “썩어빠진 조선왕조 곧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봉건적 시대를 종언하는 것”이라 했다. 때문에, 그는 “동학은 반외세, 반봉건을 기치로 한 ‘척왜척양(斥倭 斥洋)’운동”이라며 “두 가지 시대적 사명을 동시에 해결하려던 주체는 바로 무식한 조선 농민들 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리하여, 그는 “3.1운동은 국민에게 주권을 줘야 한다는 민주공화제를 기반으로 한 상해 임시정부 설립에 기폭제였기에, 운동이 아닌 혁명”이라고 재차 말했다. 아울러 그는 “3.1운동은 ‘자주 독립과 자유 민주 정신이 양립돼야 함’을 선언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주 독립 이후 독재자의 통치를 허락한다면, 그건 자유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자유민주주권을 외쳤다”는 점으로 3.1운동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또 그는 “3.1운동은 당시 동양 평화론을 제시하는 등 혁명 그 자체”라며 “‘일제 식민 통치 종언 및 조선 해방이 곧바로 동아시아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말한 선지자적 선언”이라고 전했다. 결국 그는 “3.1운동은 힘의 통치, 권력이 통치가 아닌 시민적 질서가 통치하는 평화 정신을 제공했다”며 “앞서 김형석 교수께서 말씀하신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관문이 바로 3.1운동 정신에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논찬자로 김형석 교수 강연은 새에덴 교회 소강석 목사가, 윤경로 교수 강연은 황민호 숭실대 사학과 교수가 맡았다. 신대용 통일한국세움재단 이사장이 자리를 비운 관계로, 조성기 재단이사가 개회사를 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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