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기독일보=칼럼] 지난 2월 26일 필자는 시카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오후 1시경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출발한 아들을 공항에서 만나 북쪽으로 5시간동안 렌트카를 몰아 빌 존슨(Bill Johnson)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벧엘교회(Bethel Church)가 위치한 레딩(Redding)시에 도착, 저녁 7시 금요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우리 부자가 이 벧엘교회에 온 것은 아들의 3년 된 파킨슨 병을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금요예배가 끝나고 호텔 방에 피곤한 몸을 뉘었습니다. 새벽 5시에 기상 기도와 운동을 마친 후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아침 8시 교회에 도착하여 등록을 마친 후 성령님의 치유에 관한 간단한 설교를 듣고 나서 큰 규모의 강당인 힐릴룸(Heeling Room)에 들어 갔습니다.

꾀나 큰 강당에 200~300 여 명의 크리스천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과 함께 치유 기도를 해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3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치유팀이 저희들에게 다가 왔습니다.

그 중 한 여성이 “아버지부터 치유하자”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다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후에 생각하니 성령님께서 아들의 다리 저는 파킨스 병을 고치도록 계시하심을 함께 있던 늙은 제가 파킨스 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로 여기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리는 아프지 않고 눈이 침침하고 위장이 약하고 코도 자주 막힌다고 말했지요. 그 네 사람이 저의 눈 배 코 부분 가까이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눈을 떳더니 눈 앞이 훤하게 잘 보여 ‘훤하게 잘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저를 떠나 아들에게 다가간 그분들이 아들을 위하여 본격적인 기도에 들어 같습니다.

그분들은 아들의 팔 다리 목 어깨 머리 등을 번 걸아 가면서 안수하고 기도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병마더러 나가라고 명령하는 듯했음) 10여 분 동안하고(아들은 기도 받는 동안 저도 눈물을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남성 분이 아들을 부축하며 20여 미터를 함께 걸음을 걷도록 하고 다시 10여분 동안 기도하고 또 20여 미터를 걷도록 했는데 다리를 저는 정도가 약해지더니 또 기도를 10분 정도하고 나서 걸을 때에는 거의 절지 않고 온전하게 걷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들은 순번을 기다렸다 단위에 올라가 자신의 파킨스 병으로부터 치유되었음을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힘차게 제자리 뜀을 뛰며 간증했습니다.

치유 받은 중환자들의 간증은 아들의 간증 후에도 연속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성령의 치유를 체험함을 통하여 그 동안 많은 신학자나 목사들이 성령의 치유나 기사와 이적은 사도시대 중에만 있었던 일로 사도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서 그런 기적은 끊어졌다는 주장이 거짓말임을 치유의 기적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벧엘교회(Bethel Church) 의 힐릴룸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 7-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 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에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 18-19)

위의 성경 말씀들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복음을 말로만 전하지 말고 말과 행위와 표적과 기사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도록 하셨고 바울 사도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말로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복음을 편만하게 전할 수 있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서기 313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성령이 주도하던 교회가 제도와 기관이 주도되는 교회의 제도화 및 세속화로 인하여 성령을 사모하기는 켜녕 슬프게 하고 성령의 능력을 도외시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에 의한 치유를 비롯한 기사와 이적이 기독교의 주류에서는 살아졌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이 로마 국교로 타락한 이후, 주후 320년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기 위하여 극기의 삶과 간절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함께 모여 자급자족의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중세기( 주후 600~1715)를 통하여 수도원(monastery)으로 불리운 이 신앙공동체들이 학문과 서적 보관과 출판의 중심으로 역할 하는 가운데 치유를 포함한 기사와 이적을 성령의 능력으로 행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단이 아님을 기사와 이적을 행함으로 증명하라는 교황청의 도전에 흔쾌히 응하지 못함으로써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성령의 활동은 사도시대 이후에는 끊어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When challenged by Roman Catholic authorities to prove his own authority by miracles, Luther took refuge in the authority of Scripture and his own conscience. Miracles, he argued, were particularly suited to the apostolic age and were no longer necessary to vindicate the authority of the one who stands on the side of Scripture.” (Eddie L. Hyatt, 2000 years of Charismatic Christianity p 76)

이와 같이 불행한 추이에도 불구하고 교파에 관계 없이 성령으로 충만한 크리스천들을 개인적으로라도 신유를 포함한 기사와 이적을 행하여 왔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웨일스의 부흥을 필두로 1907년 평양의 성령강림 대부흥에 이르기 까지 성령 강림 부흥이 들불처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으며 1906 ~1917년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방언과 치유은 은사가 현저했던 펜타코스탈(오순절적) 부흥운동는 카리스마틱 처치(charismatic church) 들의 성령운동으로 전개되어 우리나라에서도 1919년 김익두 목사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을 시작으로 활발한 치유 부흥 집회들이 열매를 거두어 왔습니다.

“예수가 전파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단지 가르침이나 설교로만 전파되지 않고 능력의 치유로서 전파되었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의 복음 전파의 모델을 본받아 이러한 치유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많은 질병이 있으며 동성애 탐닉자, 각종 심리병에 의한 만성적인 우울증에 사로 잡힌 자들, 귀신들린 자들에게 복음 사역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복음의 능력을 그대로 증거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독일보에 지난 3월 23일 자에 게재된 ‘[김영한 칼럼] 성령 사역자이신 나사렛 예수(II)’ 중의 주장은 매우 합당한 주장입니다.

▶ 김병구 장로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바로가기)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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