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달 월례포럼에서는 ‘종교와 정치’ 문제가 다뤄졌다. 이 포럼에서 김진호 목사(동연구소 연구실장)는 기독교의 교세 감소 원인을 진단하는 한편, 이와 맞물려 펼쳐지고 있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차분히 논했다. 베리타스는 그의 동의를 얻어 강연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대응전략_정치세력화

▲ 김진호 목사.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뚜렷한 행보로 나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 가지를 주목한다. (1)해외선교의 활성화, (2)번영신학적 주체화 경향(후기자본주의적 신앙화 현상), (3)정치세력화. 이 세 가지는 교세 감소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으로 고안된 행보들은 아니지만, 교세 감소로 인해 위축된 자의식에 새로운 자긍심과 목표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자기 해석의 실마리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 여기서는 개신교의 정치세력화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한국 근대국가 형성사에서 개신교의 정치세력화의 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변수의 역할을 했다. 교세 정도에 상관없이 개신교는 늘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였던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기도 했고, 교세의 팽창도 가능했다. ‘정교분리’라는 법적이고 신앙적/신학적인 규정을 기독교도는 물론이고 국민 전체가 공지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개신교의 정치적 행위에 큰 장애가 되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주류에서 이탈하여 진보적이고 반정부적인 정치행위를 하였던 소수 기독교도들을 공격하고 통제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군사정권이 탄생한 이후 교회는 오랫동안 전면적인 정치게임에서는 물러나 수동적으로 정부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권력자원의 일부를 할당받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에 교회는 정교분리 교리에 형식상 부합하는 행보를 했다. 왜냐면 그러한 거래는 밀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면 이러한 수동성이 적극성으로 전환된다.

6공화국 말기, 대통령 직선제 선거 국면에서 주류 교회는 ‘장로대통령을 만들자’는 기치 아래 결속했다. 1991년 12월 63빌딩에서 김영삼 대통령 후보 조찬기도회가 열렸는데, 거기에 참석한 목회자의 수가 무려 1천명이 넘었다.

‘장로대통령 만들자’는 이슈는 교회로 하여금 기독교국가의 꿈을 꾸게 했고, ‘군부독재체제 이후’ 막 시작된 한국사회의 새로운 미래구상에 교회가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그때 부상한 논점이 기독교식 통일론이었다. 1989년 결성한 한기총을 중심으로 대형교회 중심의 정치적 전선이 형성되었고, 그 결속의 담론적 축은 멸공, 친미적인 통일논의에 있었다. 이제 교회는 수동적인 방식의 정치적 개입이 아닌 적극적인 정치 개입의 길에 들어섰다.

두 번째로 기억할 사건은 김한식 한사랑선교회 대표의 1997년 대선출마이다. IMF 관리체제로 귀결되는 장로대통령의 실패는 기독교의 실패이기도 했다. 주류 교회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한식 목사가 사실상의 기독교정당인 ‘바른나라정치연합’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다. 그 역시 반공과 친미를 강조했고, 기독교의 사랑의 정치를 주장했다. 결과는 참담했지만(48,717표, 0.18% 득표) 정당을 만들고 신앙담론을 정치담론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정치적 세력화의 도정에서 그의 돈키호테적 시도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점이 된다고 하겠다. 특히 여기서 주지할 것은, 1981년 미국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을 당선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1989년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 W. Bush)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이른바 ‘바이블벨트’의 위력을 한국에서도 이어가려 했던 첫 모색이 바로, 한국교회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보수주의자 김한식에 의해서였다는 점이다. 이후 그는 한국의 유력한 대형교회 지도자들을 정치게임에 끌어들이는 데 일정한 매개자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시작한 기독교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시도는 이후 성공하지 못했고, 향후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기독교정당들이 2004년(기독민주복지당 1.1% 득표), 2008년(기독사랑실천당 2.54% 득표), 2012년 총선을 노리며, 창당과 합당을 반복하고 있지만 성과는 거의 미미하다. 2012년 총선 정국에서는 목사들의 정치적 결속은 현저히 늘었지만, 그것이 표로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더욱 나빠진 데다, 교회에 대한 교인들의 충성도가 급격히 이완되고 있고, 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신망도 또한 현지히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독교 정당들이 내건 정치적 슬로건들은 사회적 공공성을 가지고 승부하는 정당이라기보다는 이익집단적 성격이 너무 강고해서, 교인들을 정치적 지지세력으로 흡수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반면 김한식의 비전은 다른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2003년 시청광장의 대규모 기도회로 시작된 일련의 시국집회들은 ‘보수대연합체’ 형식의 정치세력화의 신호탄이었다. 이 집회들로 인해 바이블벨트가 아니라 ‘반공 친미적 극우주의’ 벨트가 형성되었고, 기독교는 이 극우벨트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했다. 이후 이 세력은 ‘극우’ 노선 ‘뉴라이트’ 세력으로 형성된 수많은 미시동원(micro-mobilozation) 조직들을 통해 존속하면서, 대형집회가 열리지 않는 일상적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극우 담론을 생산, 유통시키는 주체들이 되고 있으며, 때로 특정한 국면에서 대규모로 결속하여 거대동원(macro-mobilization)을 실현해 내기도 한다.

한편 ‘온건 우파’ 노선의 ‘뉴라이트’ 세력화 모색도 미국적 바이블 벨트의 한국화의 시도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 출범한 거대한 규모의 NGO인 ‘기독교사회책임’은 보수대연합의 정치적 비전을 명료히 했고, 이에 부합하는 정치지도자를 통한 정권 형성을 목표로 하는, 매우 정치화된 NGO다. 이후 기독교사회책임의 정치 형성적 역할은 현저히 축소되었지만, 이 진영 역시 수많은 미시동원적 조직들을 통해 존속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극우 노선의 뉴라이트와 온건 우파적 뉴라이트 조직들과 활동가들은 기독교를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이들 간의 결속에 한정되기보다는 종교간, 그리고 종교와 비종교간의 제휴와 연대, 및 담론 간 접속에 보다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들은 이념적 노선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타종교인, 비종교인들과 보다 유연하게 결속하고 있다. 그것은 필경 담론적 공론의 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형성된 전략적 제휴로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데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에게 타종교인과 비종교인들과의 연합과 제휴는 모순적 선택이며 따라서 내면적 갈등의 요인이 되었을 법하다. 그럼에도 정치적 전선간의 싸움이 벌어지는 치열한 격론의 장에서 전략적 제휴의 필요성은 압도적인 요청이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서서히 학습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웃과 공존하는 법에 대해서.

이러한 기독교 정치세력화는 다른 행위들에 비해 훨씬 강도 높게 목적의식적 행위와 비전을 갖도록 자극한다. 그것은 같은 이념의 기독교도들을 ‘잘 결속시켰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넘어서 사회적, 국가적 차원, 나아가 전 지구적 차원에 대한 목표의식을 갖도록 고무시켰다. 또한 그것은 자신의 내면적 해석체계를 형성하도록 자극하였다.

이때 기독교도들은 자신의 자존성을 해체시키는 요소들을 대면하고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정치적 전쟁에서 종교적 자의식이 굳건히 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교세 감소는 1990년대 이후를 체험한 기독교도들의 공통된 위기의식의 기반을 이룬다. 더욱이 그것을 교회내적 언술로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사회학적으로 진단하게 된다. 즉 교세 감소로 인한 위기의식을 신앙적 언어로만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정치적 차원, 사회적 차원을 함께 고려하면서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즉 민주적 제도화 10년에 대한 해석을 본격화하게 되었고, 기독교가 추구하는 정치적 제도를 위해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여 기독교의 위기는 외적 요인인 민주화와 연관되어 있고, 민주화로 인해 고취된 시민의식이 기독교정신을 사회화, 국가화하려는 교회의 방해자가 되고 있다는 해석에 도달한다. 이때 교회는 한국의 민주화를 좌경화와 동일시하며, 공공성을 강조하는 시민의식은 종북주의적 의식의 발로로 해석한다. 하여 전통적인 언어인 반공적 기조가 다시 호명되어 활용된다. 그리고 대안적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시도되는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전략들을 주목한다. 하여 기독교 도덕주의에 기초한 법률들을 정치화의 목표로 설정하고, 또한 반북적 정책들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을 규합하는 것에 관한 내적 해석체계를 발전시켰다.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는 이제 교세 감소 현상의 실제적인 원인으로 둔갑했다. 교세 감소는 사회가 좌경화된 결과이자 과정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좌경화되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그동안 이룩했던 공적과 의의는 폄하되고, 일부 사건 사고적 요소들로 전체가 대변되는 현상도 이교도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의 결과다. 한편 건강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뉴에이지 종교들이 파급시킨 문화적 타락으로 인한 것이다. 성적 타락, 약물의 남용, 가족의 해체 등은 그러한 뉴에이지적 문화의 폐단이다. 하여 교회는 그러한 문화적 남용을 제한하고 건강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엄격한 도덕률이 지배하는 사회로 재건해야 한다. 기독교가 구현하도록 위임받은 미래사회는 이런 것이다. 그것을 위해 기독교는 정권 창출을 위한 모험에 뛰어들어야 하며, 한국에서 그것은 보수대연합이라는 우파적 벨트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는 정치세력화의 행보 과정에서 교세 감소에 관한 위기의식을 해석하는 스토리라인을 발명해내게 된다. 거기에는 동지와 적이 명료하게 배치돼 있으며, 그것은 각각 미국과 북한, 이 양축의 전선을 따라 형성된 전선으로 나뉘어 있다. 하여 기독교는 적의 준동을 제압하기 위한 동지 간 연합을 형성하는 정치적 대연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정치세력화는 이렇게 교세 감소현상과 맞물린 자괴감에서 벗어나 목표의식과 소명감으로 재충전하게 하는 주체 해석의 동력으로 작용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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