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선규 목사] “물처럼 살아가라”
어려서 스승에게서 들은 말씀이다. 그때 필자는 어렸을 때였기에 그 말씀이 마음에 별로 와 닿지를 않았다. 물 보다는 돌처럼 강하게 살고 싶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강하게 살아 보고 싶었다. 생각도 언어도 행동도 모두 강하게 살아 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멋있어 보였고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날카로운 칼날에 손가락이 베이고 모난 돌에 부디 쳐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처럼 머지않아 그 강함은 저희 주변 사람들과 자신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부르짖던 어느 날 새벽에 비로소 깨달았다. ‘물처럼 살아가라’는 스승의 말씀이 떠올랐다.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인 것을 그날 이후로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 보다는 평화의 사자로 돌처럼 쇠처럼 살면서 상처 입힌 사람들이 생각났다. 이슬 젖은 눈으로 그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이제 돌보다 물이 좋다. 돌이 있으면 피해가고 웅덩이가 있으면 머무르고 밖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밀어 주면 웅덩이를 벗어나서 다시 아래로 흘러가고 가고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으니 평안이 찾아왔다.
힘이 없이 보이던 물은 돌보다도 강했습니다. 물은 모난 돌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더욱이 깨달은 것은 언제인가 산에 갔다가 산 중턱 개울가에 않아 흘러내리는 물을 쳐다보게 되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참 맑고도 깨끗하다. 어디서 모여 들었는지 서로를 소개하느라 그들의 대화가 정겹고 더불어 흘러감이 너무나 평화롭고 사랑스럽다.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함인지 힘내라. 응원함인지 나를 향한 외침들이 눈물겹다. 순리라는 의미를 새기게 된다. 물은 흐르다가 큰 돌을 만나도 겁내지 않고 살짝 돌아가는 그 지혜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산속의 개울물들에게도 고난은 있나 보다. 나딩굴어야 사정없이 떨어져야 하는 개울 낭 떨어 지가 있어 그들에게도 역시나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는 고난이 있었다.
힘이 없어 넘지 못한 둑을 놓고 동무들이 모여와 채우고 넘어가는 시범을 계속 하여 보여주고 있다. 어디까지 흘러갈까 물소리의 다짐이 힘차다.
계속하여 흘러가는 그 생명력이 이 산하가 사는 도전 정신이리라 목회를 생각해 본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 내려가는 일이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다. 그러나 이제 물처럼 하나님이 떠미시는 대로 가라 하면 가고 머무르라 하시면 머물고 어디든지 가오리라. 결심 하던 그 정신으로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리라. 다짐하니 마음이 평안하다. 어차피 흐르는 세월, 물 흐르는 대로 가리라. 조용조용 흐르는 개울물처럼 가정마다 흐르고 어우르고 더불어 가는 즐거움이 합창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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