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조만식 선생하면 모르는 이 없건만 조만식 장로 아는 이는 어디 그리 많은가?"(새가정사 편집부, “조만식 장로”, 새가정 1978년 2월호, 54p)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민족주의자로서 혹은 민족 지도자로서의 조만식 선생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만 교회 장로로서의 그에 대해서 가지는 일반의 관심은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유정우)이 8일 제208회 월례세미나를 개최한 가운데, 권 평 박사(평택대 겸임교수)가 "조만식의 활동과 기독교의 영향"을 주제로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권 평 박사는 조만식 선생이 이남에서는 김 구나 이승만처럼 일반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이북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조만식 선생에게 있어서 두 기둥은 민족주의와 기독교적 영향력"이라며 "그의 모든 활동과 영향력의 바탕에는 기독교 정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정치행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해방 이전 조만식 선생은 오산학교 교사 및 교장, 숭인중학교 교장 및 이사장, 민립대학 기성회 운동, 평양YMCA 총무,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평양실업 저금조합 평양상공 협회 창립, 관서협동 조합운동, 신간회, 조선일보 사장, 산정현교회 장로, 관서체육회 창립 등의 활동을 펼쳤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건국 평남준비 위원회, 평안남도 인민정치 위원회, 조선민주당 창당, 반탁운동 등의 활동을 했다.
권 평 박사는 조만식 선생이 민족을 위한 일관된 삶을 살았지만 그가 행하고 이룩한 일들은 매우 넓고 많아서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하고, "그가 관여하고 추진하고 실천궁행(實踐躬行)했던 많은 운동과 사업과 활동이 모두 성공했거나 뚜렷한 성과나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애써 추진하고 실천했던 일들은 성공여부를 떠나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지향점 역할을 했고 그를 중심으로 뭉치고 협력함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이라 평가했다.
더불어 조만식 선생에 대해 "일제말기 교회마저도 무너져 내리던 시대에 비폭력과 무저항의 ‘저항’을 놓지 않았던 한 신앙인의 숭고한 모습이었고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았던 유일한 신앙인의 모습"이라 평하고, "조만식은 기독교 학교인 숭실학교를 나왔고 산정현교회의 장로였으며 기독교에 입교한 이후 철저히 금주와 금연을 실천했으며 성경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민족단위의 여러 운동과 활동을 통해 구현했다"면서 "그는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전도를 강조하기도 했던 신앙인"이라 전했다.
한편 이 날 행사에서는 발표에 대해 이선호 박사(연세대)가 논찬자로 수고했다. 학술발표 전에는 제3대 유정우 원장 취임예배가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