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20여 년 전 종교다원주의 논란으로 자신의 교단에서 내쫓김을 당했던 故 일아 변선환 감신대 학장. 그를 기념하는 20주기 추모 학술문화제가 5일 감신대에서 시작되어 8일까지 진행된다. 6일에는 변선환 어록 작품전 오픈 기념식과 기자회견이 열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故 일아 변선환 선생
故 일아 변선환 선생

일아 변선환(1927.9.23.~1995.8.8.) 선생은 감리교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감신대 학장을 역임하며 '한국적 종교해방신학'을 주장했다. 감리교의 토착화 신학 전통에 서서 불교와의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적 신학의 발전에 기여했던 그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한국의 종교-문화 전통에 뿌리내리려는 토착화 신학 전통을 잇는 중요한 신학자이다.

또한 변선환 선생은 한국 신학계에 기독교와 이웃종교의 대화를 시도한 '종교간 대화'라는 화두를 도입했고, 더 나아가 종교를 통한 인간의 자유와 사회적 해방의 지평을 열고자 했던 대화와 종합의 신학자였다. 감리교의 토착화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민중의 종교성'이라는 개념 하에 이 전통을 민중신학 전통과 합류하는 한국적 종교해방신학으로 전개함으로써 종교, 사회, 문화적 주체의 문제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다만 변선환 선생은 타 종교인들과 다른 신앙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는 보수적 신학자들과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불타와 그리스도"라는 논문이 문제가 되어 1992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에서 출교를 당했다. 변선환은 당시 종교재판 최후진술에서 개종을 전제로 한 전도 활동은 타 종교를 정복 대상으로 보는 '종교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회견에서 송병구 목사(색동교회)는 "감신대가 참 불행한 것, 감리교회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가장 불행한 일은 변선환 선생을 아프게 하고 그 분의 삶과 신학을 찢으려 했던 사건"이라 지적했다. 이정배 목사(감신대)도 "변선환이란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고 말하고, "한 교단에서 교권의 힘으로 세상 사조를 종교적으로 심판하고 정죄해 사형선고를 내렸던 그런 일"이라며 "변선환 한 사람의 출교는 결국 사상적 학문적 자유가 죽임을 당한 의미"라 했다.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는 송병구 이정배 심광섭 장왕식 목사(왼쪽부터).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는 송병구 이정배 심광섭 장왕식 목사(왼쪽부터).

행사 준비위원장인 심광섭 목사는 변선환 선생을 만나 "기독교 전통 속에서 믿고 확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갖는 의미가 뭔가?"를 생각해 보게 됐었다면서, "무엇보다도 기독교 밖 이웃종교들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공부와 만남을 과거에는 소극적으로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으로 했는데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을 변선환 선생을 통해서 하게 됐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큰 의의"라고 설명했다.

질의응답 시간 변선환 선생의 복권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송병구 목사는 그런 움직임은 없다면서 "요구들이 산발적으로 있어 왔지만, 변 선생이 출교 당하던 그 당시 상황이란 것이 전체적 교회·신학적 상황 결과물이 아니라 감리교의 퇴행적 시대 역사적인 인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런 극단적인 사건일 뿐이기에 그것에 집중할 의지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일은 보다 역사가 판단할 일"이라며 "그 분의 신학과 정신을 더 떳떳 정당하게 계승하고 넓혀 나가는 것이 우선될 일"이라 했다.

더불어 송 목사는 "변선환 선생 이후 감신대는 암흑기"라고 표현하고, "건전한 대화와 신학을 하기 힘든 그런 때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감리교뿐 아니라 한국교회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고 했다. 그는 "감신대 뿐만 아니라 김리교 본부도 오래 진통 겪었는데 그 원인은 건강한 대화와 신학, 이런 것들이 붕괴되면서 너나없이 탐욕적이고 교회 크기로 평가하고 편을 가르고 그런 잘못된 경우들로 말미암아 건강한 신학 생태계가 파괴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건강한 신학과 환경, 본질이 무너져 내리면서 20년 후 오늘 결과를 보고 있다"며 "이 밑바닥 현실 속에서 다시 할 일은 논쟁할 일이 아니라 황무지 갈고 씨앗 뿌릴 일"이라 했다.

장왕식 목사(감신대)도 "쪼잔하게 출교를 당했네 마네가 문제가 아니"라면서 "엄청난 세속화와 탈근대화 도전 앞에서 기독교가 견디고 방어하고 부활시켜 세계를 향해 멋진 복음을 발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변선환 선생의 신학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라 이야기 했다.

故 일아 변선환 선생 20주기를 추모하면서 그의 어록과 사진을 담은 작품전시회가 감신대 백주년기념관 로비에서 진행 중이다.
故 일아 변선환 선생 20주기를 추모하면서 그의 어록과 사진을 담은 작품전시회가 감신대 백주년기념관 로비에서 진행 중이다.

한편 이 날 행사에서는 이하루 작가(광고디자인 전문가)를 통해 탄생된 변선환 선생의 어록과 사진을 전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모두 37점으로, 변선환 선생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아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행사에서는 송순재 목사(감신대)가 기도하고, 한인철 목사(연세대)가 축사를 하기도 했으며, 추도음악회도 잠시 열리기도 했다.

추모 학술문화제 첫날에는 용인공원묘원에 안장된 변선환 선생의 묘지를 참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으며, 8일에는 추모예배와 심포지엄과 출판기념회로 구성되어 있는 학술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다음은 변선환 선생 20주기를 추모하며 발표된 '한국신학 선언문' 전문이다. 기자회견 중 내용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서 생전에 그렇게 원하시던 세계종교의 성인들과 어울려 즐겁게 담화를 나누실 줄로 믿는다"는 구절이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송병구 목사는 그것이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종교 대화를 추구했던 변 선생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한 표현일 뿐이라며 행사의 큰 뜻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故 일아 변선환 20주기 추모를 즈음한 한국신학 선언문]

일아 변선환 선생님이 우리의 곁을 떠난 지도 20년이 되었다. 그분의 평생 신학인 종교간 대화의 신학과 아시아 신학이 1992년 교권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되었고 출교라는 최악의 판결을 받으셨다. 그 후 4년, 그분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고, 하나님 나라에서 생전에 그렇게 원하시던 세계종교의 성인들과 어울려 즐겁게 담화를 나누실 줄로 믿는다.

선생님이 가신지 20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을 추모하는 우리들은 그의 출교로 인해 움츠러들었던 대화의 신학과 종교해방신학을 다시 세워 이 신학이야말로 불통과 불투명의 시대인 한국사회와 교회가 걸어야 할 길임을 힘주어 선언한다.

종교해방신학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회의 개혁정신을 계승하는 교회개혁의 신학이고, 다원화된 사회의 만남과 소통을 촉구하는 사회적 대화의 신학이며, 억압되고 가난한 생명을 우선적으로 보듬고 연대하는 생명해방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일아 변선환 선생님의 추모 20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신학적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하는 감리교회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한국신학이 나아갈 길을 선언한다.

1. 우리는 일아 변선환이 추구한 타종교에 대한 사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모든 민족과 종교 안에 공평하게 활동하신다고 고백하며, 지속적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대화해 나갈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일아 변선환이 추구한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하여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연합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을 선언한다.

2. 우리는 일아 변선환이 평생 추구한 대화와 종교해방 신학의 정신을 이어, 한국 신학을 수립해 나갈 것을 선언한다.

3. 한국신학은 한국의 종교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고 대화하면서 신학 작업을 수행하는 것임을 선언한다.

4. ‘한국적’인 것이란 어떤 고정된 실체나 특성이 아니라 한국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세계와 사람들을 엮는 삶과 사유방식이다.

5. 한국신학은 서양 신학의 복사가 아니라, 한국적 정신과 문화와 접하여 창조적 열매를 맺으려는 신학적 노력으로서 ‘토착화 신학’의 맥을 계승 발전시키는 신학이다. 이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면서 사회적 해방의 실천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했던 한국의 ‘상황신학’과 민중신학의 정신과 맥을 계승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의 초석임을 인식하여 한국의 독립과 통일을 도모하던 통일신학의 맥을 이어 발전시키며, 한국의 사상과 민중을 함께 사유하면서 한국적 얼의 사상을 발전시킨 흐름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신학적으로 승화시켜 나간 예술신학의 사상적 보고들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을 선언한다.

6. 한국신학은 전 세계적인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매개하며 소통하는 화해의 신학이 될 것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한국신학은 ‘한반도’라는 시공간에 한정된 이들의 신학이 아니라, 거기에서 낮은 데로 임하신 그리스도의 마음과 눈으로, 가난하고 억눌리고 차별받고 배제된 하나님의 이웃들을 아시아와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찾아 연대하고 대화하는 신학임을 주장한다.

7. 한국신학은 여성, 소수자, 약자, 밀려난 자, 배제된 자, 차별받는 자, 잉여 등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지구적 정치경제 체계의 악순환의 고리를 치열하게 인식하면서, 21세기 억눌리고 차별받는 자들과 연대함으로, 존재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다시금 존재를 돌려주고, 미흡하고 불완전하나마 사회와 구조에 반영되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학이 될 것임을 선언한다.

8. 한국신학은 상상의 속도를 추월하여 발전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을 신학의 대적자로만 간주하지 않고, 신학 너머의 분야들과 소통하며 통전적으로 사유하는 열린 대화의 신학을 추구할 것임을 선언한다.

9. 한국신학은 세계의 생명과 연대하고 우주생명을 모색하는 신학이며, 아울러 역사와 자연, 영과 몸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새 창조의 신학임을 선언한다.

10. 따라서 한국신학은 그리스도교적 영성이 종교적 타자들인 동양의 영성, 즉 한국의 영성들과 만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문화 속에 성육신된 신학임을 선언한다.

11. 우리는 이 한국신학이 현재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한국교회와 사회에 새로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는 교회를 돕는 신학이 될 것을 다짐한다.

2015년 10월 6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故 일아 변선환 서거 20주기 추모 준비위원회
변선환 아키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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