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김병구 장로] 종교개혁 당시 부패한 가톨릭은 베드로 성당 건축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죽은 사람에게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구입하면 “금화가 헌금궤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연옥을 벗어나 하늘나라를 향해 올라가리라” 고 신자들을 유인하는 참으로 참담한 짓을 한 것이지요.
이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칼 하게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그리고 예정과 성도 견인론을 근간으로 하는 소위 개혁 신학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후 100 년 동안에 걸쳐 소위 개신교 교인들의 생활은 불신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그리고 안목의 정욕으로 타락했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칼빈은 성화를 주창하던 신학자인데 그를 따르고 그의 예정과 견인론을 신봉한 신자들은 왜 육욕적인 삶을 살았을까요?
그 이유는 칼빈의 신학에 내재해 있습니다. 칼빈은 예수를 믿어 거듭난 신자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데로 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신자의 성화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어 가신다고 가르칩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빌립보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를 간과하고,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만을 근거로, 성화의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I Ch 3, 12 p.262).
인간이 성화로부터 멀어져 가면 인간에게 고난을 주어서 견인하심으로 인간이 할 일은 고난을 참는 일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칼빈에게 물어 봅시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을 인내할지 말지는 누가 결정하나요? 그것도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내하도록 또는 인내하지 못하도록 결정하신다는 것이 당신의 신학이 아닙니까?
칼빈 구원론의 근간인 칼빈의 5대 강령(튜립이론)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귀하에게 적용하면, 귀하는 완전 타락하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이지만(전적인 타락), 우주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을 좌지우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당신을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서 당신의 인격이나 행위에 무관하게 예정하고 선택하시어(무조건적 예정 선택), 선택 받은 제한된 사람들만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로(제한적 속죄), 성령을 통하여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불가항력적 은혜) 구원을 주시고, 당신이 한 번 받은 구원을 결코 상실하지 않고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행해 주시어 귀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어떤 불량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반드시 천국에 가도록 보장받습니다(궁극적 견인).
일례를 들면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로서는 드물게 신자의 성화를 강조하여 가르치는 대형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그분의 글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분명히 단언하는데 여러분은 무슨 짓을 해도 천국 가는 것을 취소 받지 않습니다"(「의와 영광 로마서 강해 3」p187.)
이러한 생각이 바로 칼빈의 성도견인론에 근거를 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의 행위와 삶에 관계 없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믿음 지상주의 그리고 한번 구원 영원 구원론 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성경 말씀을 밤낮 묵상하는 사람도 세상적인 삶을 살기가 쉬운데 이런 설교를 듣고 그런 저서를 읽는 신자들이
성화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칼빈 신학은 신자들이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데로 죄를 짓도록 유인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예수님을 믿으니 나는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빈 신학은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마음데로 죄를 짓도록 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파는 효과를 발휘해 오고 있습니다.
나치 정권에 순교 당한 저항의 신학자 본 훼퍼는 행위구원론 보다 값싼 은혜 구원론이 훨씬 더 나쁘다고 갈파하였습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만을 가르치는 개신교 목사와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가톨릭 신부 중에 누가 더 존경을 받고 있습니까?
제발 칼빈 신학을 버리고 성경을 통전적으로 가르치는 퓨리턴들이 제정한 웨스터민스터 신조 그리고 무엇 보다 성경의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 오십시오. 통전적으로 묵상하면, 성경은 믿음과 행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균형되게 가르치고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바로가기)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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