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를 개신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총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칼빈주의 신학을 따르는 장로교의 신학이라고 한정해야 옳을 것이다. 개신교회들 가운데도 예정론을 믿지 아니하고 알미니안 주의 입장을 취하는 교파들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서는 이런 장로교 신학의 중심인 개혁주의 신학이 붕괴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하지 않을 수 없다. 칼빈주의를 연구한 신진 학자들 가운데도 개혁주의를 복음주의화 하는 시도를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하는 까닭이다.
개혁주의 신학을 정의하는 여러 방법이 있으나 가장 근본적 정의는 이 신학의 중심은 성경 중심의 신학이며,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진화되어가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중심 하나님 중심 보다는 인간중심 신학 이해를 앞세우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개혁주의 교회들의 실패애 기인한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성경중심 하나님중심을 부르짖지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면전에서 살기를 거절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떠난 실증들이 복음주의적 반동으로 나타나고 심지어는 신복음주의적 발상으로 거침없이 내닫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이 그 열매를 합당하게 맺지 못하자 조롱과 경멸과 함께 엄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벼라별 인본주의적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혁신학의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모 신학교의 교수로 봉직하던 이가 갑자기 복음주의로 급선회하면서 에큐메니칼보다 더한 입장을 취하다가 급기야는 강단에 승려들을 세우기 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정말 개혁주의 신학의 조종이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어거스틴에서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와 벤틸과 위필드와 벌카워와 벌코프로 이어지는 이 장구한 개혁주의 신학이 21세기에 와서 붕괴되는 아픔을 보아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속수무책임을 한 할 뿐이다. 그동안 개혁의 신학을 근본주의로 몰아부치면서 앙앙불락이던 진보신학은 복음주의의 이러한 행보를 대환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 신학자들에게 두려운 마음으로 호소하는 것은 그대들의 충정이 어찌 개혁주의 우산 아래서는 불가능한가를 묻고 싶다. 개혁주의 신학을 버리고서야 어찌 진정한 개혁교회의 근간을 이룰 수 있을가 보냐! 바라건대 진리를 보수하고 그 밖의 것은 개혁하면서 나가자는 이 아름다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사수하는 일에 다시 돌아 올 수는 없을까? 왜 개혁주의 신행협회같은 좋은 단체를 버리고 복음주의협의회니 복음주의 신학자협회니 하면서 신학적 동질성을 인본주의에서 찾으려 하는가! 개혁주의 교회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다시 한번 분발하여 성경중심 그리고 하나님 중심신학의 기치를 높이 세워 삶의 열매들을 증거로 보여 주어야 한다.
#정인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