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전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전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전7: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전7: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전7: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기독일보=이선규 목사] 갓난아이가 '으앙'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괴롭기 때문이라고도 말합니다.

사실 인생이란 울면서 왔다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야 하는 과로운 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철인들은 이런 말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눈물로 밤을 세워본 적이 없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고생을 격어야 사람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생의 괴로움은 결코 어느 특정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보편 적인 것입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울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돌아갈 고향이 나그네들에게는 나그네의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간혹 저 사람에게는 나 같은 고민은 없겠지 라고 생각되어 지는 사람일 지라도 마찬가지로 인생의 괴로움을 겪게 마련입니다.

혹은 10년 전이 좋았는데 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나 10년 전 바로 그 당시도 역시 괴로 왔던 시 간들이 없었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인생을 말하기를 “인생은 나그네”(히11:1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마 11:28),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곤고하다는 말은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곤고한 날’은 어떤 때입니까?

첫째 ‘삶에 기쁨이 없는 때’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곤고한 날은 곧 낙이 없는 날이라고 전도서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가 자신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네게 재능과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낙이 없는 날’이란 곧 언제를 말합니까? 이는 다른 때가 아니라하고 있는 일에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때입니다.

그때 사람들의 감정엔 상처가 생깁니다. 삶에 기쁨이 사라집니다.

비록 경제 적으로 유복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허수아비와 같은 삶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큰 시험으로 고통을 당할 때입니다.

욥이 시험을 당할 때의 모습이 욥기 2:13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습니다.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말도 하는 자가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있으니 바로 위기에서도 위로를 주시는 친구가 계십니다.

그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복음을 들고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곤고를 만났을 때는 그 분이 가장 가까이에 와 계십니다. 그 분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지는 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경우에서 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그 성읍들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 모든 백성은 곤고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또 욥기21:17은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이처 럼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는 우리를 곤고케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러나 곤고한 날일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성공적인 삶을 사느냐? 실패한 삶을 사느냐? 는 대개 그 사람이 순조롭게 성장해 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곤고한 날을 맞게 될 때 사람들은 쉽게 좌절 하거나 체념 하게 됩니다.

때로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모든 것을 비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혀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더욱 낙심 가운데로 빠지게 됩니다.

잠언 24:10을 보면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심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곤고한 날에 낙심에 빠지면 인생살이는 한층 고달파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곤고한 날에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본문 말씀은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생각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말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반성하라, 찾으라, 결심하라’가 그것 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부닥쳤을 때 실망과 낙담에 빠지기 앞서 자기 자신을 깊이 반성해 보며 무엇인가 새로운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곤고한 날을 이기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언4:19)곤고함을 당하여도 그 원인을 생각하지 못하면 이는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다윗왕의 위대성은 곤고한 날에 그 원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가 곤고한 날에 처해 있을 때 그 원인을 깊이 사색 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여삐 여기시사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시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시편 25:18에 다음과 같은 다윗왕의 노래가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곤 고의 환란을 보시고 내 죄를 사하소서.” 곤고함을 당하게 될 때 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지은 죄가 곤 고의 원인이 됩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란과 곤 고가 있으리니 (롬 2:9)그리고 의롭게 살려는 노력 에도 곤 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마 5:10) 의롭게 살려는 사람도 곤 고가 있을 수 있지만 천국을 소유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곤고함의 주된 원인은 나의 죄와 악일 수 있습니다.

또는 사탄의 공격 일 수 있습니다. 의롭게 살려는 노력 일 수 있습니다. 나의 죄와 악이라면 회개해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 이라면 믿음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의롭게 살려는 데서 생긴 곤 고라면 인내로 전진해야 합니다.

여기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는 말은 주님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다윗왕은 곤고한 날에 하나님께 기도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 궁핍 하오니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 하소서. 내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 하소서”(시편86:1, 2)

다윗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였을 때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곤고한 날에 하나님을 찾으며 그 분을 체험한 자만이 그 곤고한 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절박한 위기에 부딪히게 되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르게 마련입니다.

가령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나 산속에서 맹수를 만난 자가 ‘사람 살려하고 외치는 경우가 바로 그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위기를 만나게 되면 그러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사람이 최악의 경우를 당하여 자기 구제를 호소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절대 적인 구제나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 우리 들은 어떻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까? 대다수의 성도들은 하나님은 생각지 아니하고 그 문제에 얽매어서 정신없이 씨름 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은 관심조차 버립니다. 막상 하나님을 붙들고 나가야 할 사람이 저가 언제 하나님을 믿는 자였던가? 할 정도로 하나님대한 믿음과 신뢰를 저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곤고하고 어려 울 때 도우시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곤고한 날은 새로운 결심을 하는 때입니다. 시편 77:12절을 보면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깊이 생각하여 결심하겠다는 뜻입니다.

곤고할 때에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께서 나의 인생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큰 뜻을 받아들이게 될 때 곤고함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더욱 생생히 체험 하게 될 것입니다.

요나는 곤고한 날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하였습니다. 즉 그렇게 마음에 내키지 않던 니느웨로 갈 것을 결심한 것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결심을 한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곤고함에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2:2에 보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셨습니다. 3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을 이같이 거역한 이를 참으신 이를 생각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나도 이길 수 있습니다. 피곤하지 않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날은 누구 에게나 찾아옵니다. 언제 갑자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될 런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지경에 처하든 우리는 곤고한 때에 결코 낙심하지 맙시다. 곤고한 날에 생각 하라는 말씀대로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주님의 뜻을 찾읍시다.

그리고 내 생각을 벗어나서 주님을 뜻을 받아들여 그것을 이루겠다고 하는 새로운 결심을 다짐 하십시다.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의 삶을 회복 주실 것 입니다.

다윗은 시편 90:15에서 “우리를 곤고한 날의 수대로 우리의 화를 당한 년 수대로 기쁘게 하소서.”라고 곤고한 날에 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곤고한 날은 주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날입니다. 곧 형통의 날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곤고한 날을 당한 분이 있으면 하나님의 형통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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