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2시. 서울 자양동 자양로길에 초록색 빗자루와 주황색 비닐봉투, 회색 집게를 든 30여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고등학생들부터 백발이 무성한 장년들까지, 저마다 청소 도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주일예배 후 거리로 나온 영광교회 교인들이었다. 푸른색 양복에 갈색 장갑을 낀 김변호 목사(48·영광교회 담임)의 지시에 따라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져 폭 7미터, 길이 400미터의 길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5일 오후 2시 영광교회 김변호 목사가 서울 자양동 자양로15길을 청소하고 있다. 그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은 크리스천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 박현우 기자 |
“매월 첫째주는 교인들과 함께 거리를 청소하고 있어요. 거리가 일단 깨끗해지면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세요. 특별히 교회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았는데 주민들이 알아보시고 ‘목사님, 수고하십니다’ 할 때마다 기쁘죠.”
13년 전 자양골목시장 지하에서 시작된 영광교회는 허름했다. 여름이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어났다. 겨울엔 콘크리트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예배당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먼지 묻은 조그만 교회 간판은 눈에 띄지 않아, 얼핏 봐선 교회인지 상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역 사회를 섬기고 크리스천 리더를 키우는 교회로 만들겠습니다.” 1998년 영광교회에 막 부임한 34세의 김변호 목사는 이런 비전을 선포했다. 그리고 곧바로 소년·소녀 가장들을 교회로 불러 모아 공부방을 꾸렸다.
‘새빛 공부방’이라 이름 지은 이곳에서 주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교육을 했다. 얼마 후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책을 읽게 했고, 무료 컴퓨터 교실도 열었다. 방과 후 교육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기였기에 모든 아이디어는 김 목사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6년 후 2004년. 김 목사는 동전까지 다 합쳐 겨우 헌금 1억 원을 모았다. 자양동에 지역아동센터를 짓기 위해서였다. 김 목사는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길러내고 싶었다. 교인들도 센터 건립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곧 교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김 목사가 “지역아동센터는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교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그 센터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김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좋은 건물을 우리가 사용하기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엄마 아빠도 없이 매일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사용하길 원하겠습니까?” 김 목사의 말에, 교인들은 불평을 멈추고 기쁜 마음으로 그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십자가 정신 잃지 말아야죠, 그게 옳은 길이니까요”
▲김변호 목사는 자신의 목회 스타일을 ‘개인 목회’라고 일컬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현우 기자 |
“사실 어려운 일이죠. 지역 사회를 섬기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거잖아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이 일도 하는 것이죠.”
김 목사는 지난 2007년 사단법인 ‘해피엘’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복지기관을 조직했다. 그리고 해피엘 산하에 지역아동센터와 노인복지센터, 더맨리더스쿨, 새빛지역도서관을 둬서 지역 사회를 섬겼다.
“교회가 지역과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아서 사람들이 들어오기 부담스러워 합니다. 비기독교인들도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여러 소통 방식을 만들어 두는 겁니다. 지역 사회를 섬기기 위해 ‘해피엘’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죠.”
현재 김변호 목사가 조직해 운영되는 기관만 10여 개가 넘는다. 모두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조직들이다. 하지만 김 목사가 담임하는 영광교회는 대형 교회가 아니다. 교인 수는 150명. 예배당과 사무실은 빌딩 건물의 3, 4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해요. 어떻게 이 적은 수로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느냐고 궁금해 하는데, 다 하나님의 은혜죠.”
김 목사는 국가로부터 지역 사회 기여도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과 2009년, 2011년에 각각 서울시장으로부터 두 차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한 차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김 목사가 지역을 섬기는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것”이라고 했다. “유혹들이 있죠. 저도 얼마든지 사람들 끌어 모아서 대형집회 하고, 큰 교회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옳은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