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동윤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간도, 만주, 연해주 일대로 뻗어갔던 한국교회의 북방선교 역사를 되돌아 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주최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한국교회 북방선교역사 고찰 - 장로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제6회 한국교회사 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에는 서굉일 교수(한신대 명예), 정경호 교수(영남신대 은퇴), 정호상 목사(블라디보스톡 선교사), 황기식 목사(한국장로교회역사학회 수석부회장)이 발표를 맡았다.
서굉일 교수는 '북간도 지역 민족교회의 역사와 그 의의'라는 발제에서 먼저 "두만강 건너 북간도는 러시아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활동 무대였고 한말에는 함경도 변경민들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신천지였다. 나아가 일제 침략과 그를 이은 식민지 지배 시기에는 국권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해방 투쟁의 중심무대가 된 곳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전파된 교회는 민족주의 교회로 발전했다"며 당시 북간도 지역 선교의 특징을 설명했다.
이어 서 교수는 일제 강점기 북간도 지역에서 이뤄진 민족주의 교회의 역사를 전하며, 특히 이주 한인 사회의 형성과 캐나다 선교부의 선교활동 및 민족 독립 운동가들의 헌신 그리고 북간도 지역에서 발전했던 이주 한인 사회의 면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서 교수는 북간도 지역에 특별히 신앙적 동기에서 출발한 종교적 측면의 이주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종교, 천도교, 천주교, 원종교 등은 이 시기 북간도 이주 한인 사회에 새로운 종교였고 여러 형태의 이주촌이 형성됐다고 전했다.
그 중에서 기독교 측면의 집단 이주 사례도 있었으며, 서 교수는 "기독교 촌락 집단의 이민은 북간도 전역에 50여 처 이상으로 확인됐다"면서 "이처럼 간도 4현에는 합방을 전후 한 시기에 크고 작은 예수촌이라 불리는 한인 이주 마을이 건설되고 한인 사회가 형성됐다"고 소개했다.
또 서 교수는 "북간도 선교의 가장 큰 공로는 캐나다 선교회의 업적으로 캐나다의 선교사들은 북간도에 민족주의 교회가 형성되도록 원인을 만들어 줬다. 1898년 캐나다 선교부는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회로부터 함경도 지역 선교 구역을 이어 받았을 때 그 범위는 함경도 서북간도 만주 및 시베리아까지를 포함했고, 북간도 한인교회와 관계가 깊은 캐나다 선교부의 선교사들은 배일적 태도를 분명히 했고 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직접 간접으로 지원해줬다"며 북간도에서 한인교회를 지원한 캐나다 선교부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서 교수는 "북간도 지역은 기독교 세력들에 의한 민족운동이 활발했고, 북간도에서의 민족운동의 기초는 김약연, 구춘선, 정재면 등 교회 설립과 이주 한인 사회의 단결을 도모하는 기독교 운동과 연계돼 이뤄졌다"며 민족주의 교회 활동이 북간도 선교의 특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북간도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간도,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선교를 위해 노력하다가 일제와 마적 및 공산당에 의해 목숨을 바친 순교지의 땅이었다"며 "오늘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 뿌리는 북간도 민족교회의 선교 정신과 연결돼 있으며,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에 힘써 지하교회와 가정교회가 더욱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한국교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 북간도 교회가 유랑민 같던 한인 사회 이주민들을 섬겼던 그 뿌리들을 기억하면서, 오늘날 두만강변에 흩어져 있는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선교의 사명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정경호 목사는 '명동촌의 민족신앙과 신앙공동체 이야기 - 김약연 목사의 명동촌 마을을 중심으로', 황기식 목사는 '간도, 만주 연해주 지역 한국장로교 노회 형성사', 정호상 선교사는 '러시아(연해주)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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