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6:63~71)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 하셔서 방 방 곡곡으로 다니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 하실 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누가복음 12:1에 보니 "그 동안에 무리수만이 모여 서로 발붙일 만한 곳도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5천명의 많은 군중들을 먹인 사건이 있고 난 뒤에 사람들은 이렇게 마음속에 생각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 동안 팔레스타인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경제적인 수탈을 당 하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굶주림을 면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그들의 절박한 문제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청년인 예수라는 사람이 일순간에 5천명을 먹이는 사건을 접하면서 이들의 마음 속에는 '저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된다면 우리들 한 사람도 굶주리는 사람은 없겠다'하는 생각들이 자리 잡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기회를 봐서 예수라는 젊은이를 우리의 왕으로 삼아야 하겠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문제인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 온 생명의 양식이다"
66절에 보면 이러므로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 가면서 걸리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똑똑하면 똑똑 할수록 의심이 많은 사람은 많을수록 더 많이 걸립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성경을 읽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논리를 펼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자들이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선생이 수학 문제를 하나 출제했는데 그 문제에는 분명히 해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준이 안 되니까 "어렵다", 실력이 안 되니 "어렵도다"하고 덮어 버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욕구 지향적인 본능을 가진 존재들 이라고 말합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물을 찾아 헤맵니다. 명예의 욕구가 강한 사람은 명예를 권력 지향적인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 기본적인 욕구가 먹고 사는 욕구입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당시 사람들은 예수가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다. 하더라.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다 하더라.
장님의 눈을 뜨게 하셨다 하더라. 이것은 빅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많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 그 분을 따라 가면 뭔가 있겠구나?
동서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 보면 '욕망의 불나방'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욕망의 불나방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죽음 입니다.
여름밤에 불을 켜 놓으면 수 없이 많은 나방들이 그 불을 찾아 날아들다가 죽지 않습니까?
인간도 욕망이라는 불을 향해 날아들다가 결국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불에 타 없어지는 불나방과 같은 존재들 바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인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욕망의 불나방들이 되어서는 아니 될 줄 압니다. 우리 기독교의 근본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이차적이 되고 다른 무엇이 개입되어 그것이 우선시 되어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66절을 보면 "그들이 다 물러가고 다시는 예수님과 같이 다니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6:2절에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 하시는 표적을 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여러 가지 행 하시는 이적과 기사를 보고 호기심으로 따랐기 때문에 결국은 떠났습니다.
2. 떡과 고기를 먹고 배가 부르니 가도 된다는 것입니다. 60-70 년대의 열심히 배고픔을 채우려고 교회에 몰려왔습니다.
배가 부른 것이 하나님이 되어 점점 신앙이 식어져 갑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이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니 물러갔습니다.
6:41절을 읽어 봅시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물러갔습니다. 신앙은 후퇴가 아니고 전진입니다.
64절과 7:5절에도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 함 일러라"고 했고 6:66절에는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믿음이 없으니 주님을 떠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끝까지 있고 싶어도 믿음이 없는 자들은 결국은 떠나가고 말 것입니다.
4, 말 많은 자들은 다 물러갔습니다.
61절에 "수근 거리는 줄 아시고" 41절에 "가로되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저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써 내려 왔다 하느냐"고 수근 거릴 때 4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서로 수근 거리지 말라"고 했으며 그들은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6:14절에는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 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상관하며 관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본주의와 신본 주의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무익한 육과 살리는 영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결국 인본주의는 떠나가고 맙니다.
그들이 예수를 떠나가게 된 이유는 표적을 보고 따랐기 때문이고 의식주 문제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정말 지옥의 불 나 방처럼 욕망의 불 나 방처럼 허우적거리는 엉터리 예수쟁이 구경꾼의 무리들 때문에 오늘의 교회가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본래 예수를 믿고 따른 것이 아닙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하는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 사도가 대답하기를 "영생의 말씀이 계시 매 우리 가 뉘 게로 가오리이까?"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의 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기로 했으면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던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되도다. 네게 이 사실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것이 어떤 지식이나 능력이나 여러분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65절에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시지 아니 하시면 누구든지 내게로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의해 역사를 변화 시키지 못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그 당시에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다. 그 사람들이 영생의 말씀을 바로 깨달았을 때 았을 때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셰계를 변화 시키는 위대한 역사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바로 영생하는 양식이 되십니다. 그러면 이 생명의 떡을 어떻게 먹을 수 있습니까.
먼저 영적으로 배고픔을 느껴야 합니다. 제 휴대폰의 충전이 거의 소진 되어 가면 '배고파' 하 고 소리를 냅니다. 제가 배고픔을 해결해 줍니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는 주인 임금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으로서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고 주인 위하여 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영생 하시고 그의 말씀도 영생의 말씀이계신데 이 진리를 신앙의 지혜로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희미하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 이었습니까?
69절에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 하신자신 줄 알았나이다" 하나님의 세우신 독생자라는 것은 예수님의 직분을 한 마디로 말한 것인데 예수님의 세 가지 직분 이름은 선지자 이며 제사장 그리고 <마28:18-20> 왕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알고 믿은 사람들은 주님을 떠나 멀리 갈 수가 없고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줄 알고 자든지 깨든지 주님과 함께 호흡하고 주님과 함께 일하고 주님께 순종하고 기도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들은 죽인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태언 하고 담대하게 죽음에 임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영생하는 종교입니다. 지상에 그 누가 영생을 주겠다고 장담 할 수 있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아들 되신 예수님 있는 자는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했으니 우리는 더 이상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아니라 나는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라 고 고백 하는 여러분 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