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첫 국가가 됐다. 가톨릭 영향력 강한 아일랜드 특성상 교회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 가톨릭의 목소리가 약해진 결과라는 것. 아일랜드 동성애자들의 환호 속에 아일랜드 교계는 고민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 다수 외신에 따르면 아일랜드 국영 RTE방송은 동성결혼 합법화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결과, 찬성투표 비율이 62.1%로 37.9%인 반대투표 비율을 웃돌았다는 선거당국의 발표를 보도했다.
아일랜드 선거당국은 국민투표에서 "결혼은 성별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두 사람에 의해 계약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어 헌법을 고칠지를 물었다.
이로써 아일랜드는 동성 결혼을 국민 투표에 의해 합법화한 첫 번째 국가가 됐다. 미국을 비롯해 19개 국가에서는 의회나 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왔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아일랜드의 카톨릭 교회 지도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사회 혁명"이라고 불렀고, 수천명의 게이 인권 운동가들은 환호하며 서로 껴안았다.
아일랜드 주요 정당들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했다. 집권 통일아일랜드당은 적극적인 찬성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엔다 케니 총리는 투표 결과에 대해 "아일랜드 국민들이 관대하고 인정이 많고, 기쁜 사람들이란 걸 알렸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조안 버턴 부총리는 "마법이 움직이는 순간 아일랜드에서 세계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며 국민들의 선택을 승리로 선언했다.
차기 아일랜드 총리로 거론되는 레오 바라드카르 보건장관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국민투표라기보다는 시민혁명 같다"고 표현했다.
동성결혼을 적극 주창해온 이엄 길모어 노동당 당수는 전날 찬성 투표결과를 예상하면서 "평등에 대한 아일랜드 국민의 매우 강력한 선언"이라고 반겼다.
앞서 아일랜드 집권 통일아일랜드당은 지난 2013년 헌법검토위원회를 꾸려 동성결혼을 포함한 개헌 사항들을 검토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투표의 길을 열었다.
서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인 아일랜드 특성상 예상치 못한 국민투표 결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투표를 행사한 유권자 120만명 이상이 동성 결혼에 대해 찬성표를 던져 75만명의 반대를 눌렀다. 또 43개구의 선거구 가운데 찬성보다 반대표가 많은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수 만명의 젊은층이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것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거나 동성애자 아이들을 위한 희망 등 가슴을 뭉쿨하게 하는 개인 스토리를 다룬 '예스(yes) 캠페인'도 동등한 결혼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많은 찬성표를 이끌어 냈다.
또한 동성결혼 합법화를 통해 동성결혼 반대 캠페인을 벌여온 아일랜드 가톨릭교회의 위상 추락을 나타낸다. 1990년대 초반 가톨릭 교회는 일련의 아동 성추행 의혹들을 겪으면서 위상이 떨어졌다.
한편 아일랜드 교회는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동성결혼을 계속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복음주의 가톨릭교도와 신교도 연합은 마지막주 동성결혼 반대를 호소하는 9만장의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대주교·주교들은 성명을 통해 "아일랜드 교회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간 결합으로 정의한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이 정의를 바꾸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일랜드의 디어미드 마틴 더블린 대주교는 "동성 결혼에 대한 카톨릭 지침에 맞선 압도적인 투표는 카톨릭 지도자들이 아일랜드의 젋은이들을 위해 새로운 메시지와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