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8:21-30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광야의 외로운 새처럼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나이다.
나의 소망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있사오니 만물 안의 모든 것은 변하고 지나갑니다.
옛 사람이 죽고 죄의 몸이 불구가 되었으나 죽을 몸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 스스로 제어할 수 없나이다.
내 몸을 쳐 복종시키며 육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멸하나이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이 몸이 의의 도구로만 드려지기 원합니다.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여 주소서.
하여 영의 이끌림을 받는 한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초막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계속하여 가르치신다.
"나는 가겠고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다"(21절).
유대인들이 말하였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하니 이 사람이 자살을 할 것인가?"(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23절). 그래서 나는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24절).
그들이 예수께 '당신이 누구요?'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였다. 그리고 너희에게 대하여 내가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다. 그런데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며 나는 그에게서 들은 대로 세상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26절).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2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줄 알고 또 내가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대로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28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29절).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30절).
예수께서 '내가 가겠다'라고 하시고 '너희가 올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가 '가겠다'라고 하신 것은 그의 죽음을 지칭하는 것이며 아버지께로 돌아감을 의미한다(13:1).
그들은 예수를 헛되이 찾게 될 것이고 그들은 그가 올라갈 하늘로 올라갈 수 없다.
예수의 죽음과 승천은 다른 누구와 공유할 수 없으며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후에 베드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13:33).
다만 그가 보내신 성령이 오시고 그로 인해 그와 연합한 자만이 그리로 갈 수 있다(14:20).
유대인들은 그가 가며 그들이 올 수 없다는 말을 오해한다. 혹 그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거듭하여 자기의 기원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는 위에서 났으며 그들은 아래에서 났다.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그들은 세상에 속한다.
여기서 '위'는 만물 위, 하늘, 창세전이 세계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3:31).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예수께서 위에서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인 영생을 주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셔서 아들 안에 있게 하셨다(5:26).
그리고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아들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딛 1:2; 벧전 1:20).
때가 되어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3:16).
그는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땅에서 들리신다(3:14).
이는 그가 죽음을 통해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감을 뜻한다(12:32).
그리고 그의 죽음 안에 연합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3:15).
이에 반해 모든 사람은 아래에서 났다.
그는 아담 안의 운명으로 죄 가운데서 살다가 영원한 사망에 이른다.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이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들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요한복음에서 '내가 그'(헬, 에고 에이미)는 '내가 이다'와 같은 말로 신적 계시의 언어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 '나는 이다'(야훼)는 '내가 그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사 43:10).
후에 예수를 잡으러 온 군병들은 '내가 그니라'는 신적 계시 앞에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 18:6).
그러나 유대인들은 '내가 그'라는 말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도리어 '당신이 누구요?'라고 묻는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자기를 증거하셨다.
물론 그의 증거는 자신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할 말이 많고 판단할 것도 많다.
그는 오직 보내신 이가 가르치신 말만 세상에 대하여 말한다.
보내신 이가 가르치신 말은 영원한 생명이며, 예수께서는 그것을 그대로 하여 보내신 이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12:50).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17:2).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17:4).
이렇게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만 증거하신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깨닫지 못한 채 혼돈 속에 갇혀 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인자를 든 후에야 '내가 그'인줄 알고 그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행하였음을 알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그와 논쟁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의해 들림, 곧 죽임 당하신다.
유대인들은 하늘로부터 오신 아들을 결코 알지 못한다.
어찌 세상에 속한 지혜로 하늘에서 오신 그를 알 수 있겠는가?
만일 알았더라면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예수께서 죽음으로 영광을 받으신 후 보내신 성령으로만 그가 '하나님의 계시자'(내가 그)임을 알 수 있다.
곧 하늘로부터 오셔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그 때 비로소 그에게서 들은 영생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
그를 믿는 자는 아버지 집으로 가며, 그가 가신 곳으로 가는 것이다(14:6).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3-14).
그때까지 아무도 '내가 그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혼자이다. 하지만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이는 아버지가 그에게 주신 일, 곧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29절).
후에는 제자들까지도 그를 혼자 두고 떠났다. 그러나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이들의 믿음은 즉시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31절;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곧 이들의 믿음은 진리 안에 거하지 않는 믿음으로 불완전한 믿음인 것이다.
4. 나의 묵상
요한복음은 참으로 믿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힌다.
나는 열렬히 예수를 믿었던 자이다. 누가 나의 열심에 버금가는 자가 있었으랴!
주야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생명, 예수구원, 예수능력을 수도 없이 부른 자였다.
그런데 삶의 실제는 여타 종교를 믿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래에서 나서 죄가 운데 살다가 죽을 인생이 믿는 그런 종교였다.
사실 종교란 아래에서 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사망으로 끝나는 인생을 대상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당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온다.
더 나아가서 죄가운데 사는 인생이 당하는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중 하등종교는 육신적 물리적 고통해결이, 고등종교는 정신적 고통해결이 그 목적이다.
고등종교를 자처하는 불교는 육체적인 고통이나 환경적인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고 말한다.
깨닫지 못하고 무지하며 집착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는 정신의 고통이 참된 고통이라고 설파한다.
하여 그들 영적 지도자들은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해탈에 이르는 길만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불교영향권을 받은 아시아 제국은 물질적 안락과 육체적 건강을 추구하는 서구사회와 대조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종교는 아래에서 났고 아래에서 난 인생들을 잠시 위로할 뿐이다.
이에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위부터 태어나는 것이며, 이는 위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만 성취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아래에서 난 자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유대인들처럼 인간적 지혜로 하나님, 예수, 성령, 성경을 연구하고 쟁론하는 자였다.
하늘에 속한 말씀은 들리지 않았고 깨닫지도 못하였다.
이미 진리의 영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였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나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고, 스스로 묵상하지도 않았다.
종교생활의 결말은 심판이고 사망이다. 그 결말이 임했다.
죽음이후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 임한 심판, 그것은 은혜요 축복이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이성과 경험이 와해된 그 자리에 계시가 임했기 때문이다.
2010년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그니라'라는 말씀이 영으로 깨달아졌다.
위, 만물 위, 태초, 창세전, 영원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영광중에 계심이 밝히 보여졌다.
마침내 종교생활이 죽고 생명의 삶이 시작되었다.
영생은 하늘의 아버지와 아들과의 사귐이다.
비록 죽을 몸으로 인해 불완전한 사귐이나 하늘의 기쁨은 실재한다.
이는 날마다 십자가에 옛 사람을 못박고 죄의 몸이 불구되었을 때 경험하는 실재이다.
새벽, 마가복음을 읽는데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 광인에게 눈길이 간다.
고랑과 쇠사슬에 매인 광인은 고랑을 깨트리고 쇠사슬을 끊어버린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죄의 몸은 고랑과 쇠사슬에 매인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내 속의 죄악된 본성과 내 밖의 죄의 세력은 무시로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트려버린다.
아, 누가 나를 제어할 것인가! 아무도 나를 제어할 자가 없다.
어찌 이런 몸으로 영생을 살며 하늘에 속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랴!(막 9:43).
오직 은혜로만 된다. 내 몸을 쳐 복종시켜 십자가에 달릴 때 주어지는 은혜로만 된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든다. 오늘도 십자가를 붙든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아들에 대해 당신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사람들과 할 말이 많았습니다. 수없이 판단했습니다.
아들도 보내신 이의 말 외에 하지 않았고 판단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종교생활에 열심을 내며 이생의 성취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아래에서 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을 인생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아버지여...
그 끝이 사망인 자, 그 날에 속히 임했습니다.
공의의 심판이 임하고 결국 없어질 것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 비참한 자리에 계시가 임하고 창세전 세계를 보게 되었나이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보고 듣고 자세히 보고 만진 바 되었습니다.
'내가 그'임을 알고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을 보았나이다.
아버지...
그러나 여전히 불완전한 나를 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죄의 몸이 불구된 자이나 언제나 살아난 자 됩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음을 자복하오니 은혜로 다스려 주소서.
제게 행하신 그 크신 일을 기억하며 찬양하나이다.
값으로 산 몸, 당신의 선한 도구, 의의 도구로만 드려지게 하소서.
육신의 생각을 멸하시고 영으로 이끌림 받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나를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