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5:19-29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 시작 기도
아버지여! 롯과 그의 식구들을 죄악의 도성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주의 자비로움입니다.
저들은 그 성에서 도망하여 산으로 가야만 했나이다.
종을 큰 성 바벨론에서 이끌어내신 것 역시 주의 한없는 자비였습니다.
이제 그 성에서 도망하여 위의 것을 찾으며 당신의 품으로 가야만 합니다.
하오나 종은 롯과 같이 육신의 생각에 붙들려 머뭇거립니다.
세상과 그 존재물에 치심하고 그로 인해 즐거워하고자 합니다.
오, 주여! 주를 기뻐함이 나의 힘이 아니옵니까?
오염된 영혼, 보혈로 씻어주사 정결한 마음으로 말씀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성령이시여, 불쌍히 여기사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다.
그는 일어나 그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유대인들은 이 일을 알고 그가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고발하였다.
당시 미드라쉬 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비어 있는 자리'를 운반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유대인들은 병 낫게 한 이가 예수임을 알고 그를 박해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 말로 인해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그것은 그가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친 아버지라고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는 긴 담론으로 이어진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행한다(19절).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보다 더 큰 일을 아들에게 보여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20절).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을 일으켜 생명을 주시듯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21절).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22절).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 아들도 존경하게 하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자이다(23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져 있다(24절).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살 것이다(25절).
그것은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신 것처럼 아들에게 생명을 주어 그 안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26절).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위를 주셨다.
그것은 그가 인자(the Son of Man)이기 때문이다(27절).

이 말을 한다고 해서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많은 사람이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다(28절).
선한 일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에 이를 것이다(29절).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가 자기가 동동하다고 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지도 못하며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리도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대적자들 앞에서 아버지와 아들 자신의 관계를 계시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는 자는 아들과 그의 제자들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 16:2-3).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며 기독교 진리의 본체이다.
영생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며(17:3),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안에 거하는 것이다(17:23-24).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세상에 속한 지식이 아니라 만물 위, 창세전, 하늘에 속한 진리이다.

창세전 아버지는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셔서 아들 안에 생명이 있게 하셨다(26절; 1:4).
아버지는 아들보다 크시다(14:28). 아버지는 상위권위이시며 아들은 하위권위이다.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였고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을 사랑하여 영광을 주셨다(15:10; 17:24).
그 영광은 아버지 자신의 본질을 계시하신 것이다(1:18).
아들은 아버지 안에 거하여 하나가 되어(10:30; 17:22), 아버지 품속에 거하였다(1:18).

이로써 아들은 아버지께 겸손하게 복종하여 완전히 의존할 때에만 아들이 된다.
그는 아무런 독립적인 신분도 가지고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오직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만 행한다.
이는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셔서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보이셨기 때문이다.
아들의 유일한 목적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며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모든 것을 승인하신다.

아들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은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죽은 자를 살리시듯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시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안에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을 자유롭게(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행하신다.
곧 아버지가 행하신 모든 일을 보았고 그가 본 것을 그 자신이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도 역시 생명을 준다.

아들이 생명을 주는 것은 두 가지 사상을 의미한다.
①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아들의 생명을 준다(24절).
② 마지막 날 그가 재림할 때에 부활의 생명을 준다(28-29절).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
사람들은 심판주를 공경해야 하는 바,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신 것은 사람들이 아들을 공경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심판은 생명을 얻지 못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공의이다(24절 참고).

아들의 말을 듣고 그를 보내신 이(아버지)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영생을 얻은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바 되었다.
아들의 말은 생명을 주는 말이며, 영이요 생명이다(6:63).
곧 창세전에 기원을 둔 생명의 말씀이며(요일 1:1),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써 복음이다(벧전 1:23-25).

그리고 그의 말은 그에게 영생의 말씀을 하도록 명하신 아버지를 믿게 한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12:44-45).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12:49-50).

죽은 자들이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듣는 자는 살아난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모든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은 창세전 아들에게 주신 생명(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딛 1:2).
이 생명은 아들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주어지는 생명이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만들어진 생명'(made of God)이며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다(롬 5:14).
그는 아들이 오심으로써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할 자였다(born of God).
하지만 그는 죄를 지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날 기회를 상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전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다.
그래서 마침내 아들을 보내시고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아들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곧 아버지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셔서 그 안에 있게 하신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생명을 거절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임한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인자됨으로 인해 심판하는 권세를 그에게 주셨다.
여기서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로서 다니엘서 7:13-14절에 예표된 인자이다.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은 인자에게 권세와 나라와 영광을 다 주셨는데, 심판하는 권세로 주신 것이다.

마지막 날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이 말씀은 상기한 24절과 관련된다.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다.
그가 아들의 말을 듣고 아들을 보내신 이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는 최후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바 된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안에서 사는 이를 말한다.
반면 악을 행한 자는 영생이 없는 자로서 최후의 심판에 이른다.

마지막 날 영생이 있는 자는 이미 맛보고 있는 영생의 삶을 완전히 누리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
그러나 영생이 없는 자는 이 땅에서도 심판 아래에 살아가며 죽은 후에도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에 처해진다.

4. 나의 묵상
나는 오래도록 예수를 믿었으나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한 자였다.
그러면서 열심을 내었으나 교회의 핍박자요 포행자요 훼방자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유대인들이 생명의 문제는 제쳐두고 안식일 법으로 시시비비하듯 그런 일을 자행한 자였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죄의 세력에 무참하게 굴복하여 억울함, 분노, 분쟁, 시기, 다툼을 일삼았다.
외적으로는 경건해 보였으나 내적인 평강과 기쁨을 알지 못했다.
그로 인해 노이로제, 강박증, 나아가 육체적인 질병까지 가져왔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수시로 암송했으나 영생은 실재되지 못하였다.
죽어서 가는 천국정도로만 알았다.
영생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며, 아들의 복종 안에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없고 오직 아들만,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행하는 아들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영생에 무지하니 무엇이든지 내가 주체가 되어서 행하였다.
결과도 철저히 나의 몫이었다. 잘되면 자고하여 하나님처럼 되고 안 되면 비참한 자 되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 아들의 생명이다.
그러나 아들의 생명을 모르니 죽은 자들에게 수많은 일들을 자행하였다.
옛 사람을 상대로 치유하고 변화시키고 위로하는 그런 사역들을 자행한 것이다.
새 생명으로 사는 길을 모르니 옛 생명을 어떻게 해보려고 씨름한 것이다.
그 끝은 심판에 이르는 것이 자명한데 말이다.

어제 복음생명캠프를 끝내고 돌아오는 중 고속도로 곁에 큰 건물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상처가 별이 되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치유로 유명한 교회였다.
그 표어를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바로 '사 30:26'말씀(상처가 일곱별이 된다)을 이용하여 치유사역에 매진하던 자였기 때문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 그들은 새 생명을 원하는데 죽은 그것을 치유하려던 가증한 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버젓이 그 말씀을 감히 도용하여 큰 무리를 오도하고 있으니 씁쓸하기 한이 없었다.
잠시 필요사역으로 간주할 수 있으나 교회건물에 크게 붙여놓은 것을 보고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가증한 자를 멸하지 아니하시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무궁하다.
그 인자하심이 그런 치유사역자들, 생명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임하기를 간구한다.

3일간 캠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였다.
창세전 약속된 아들의 생명이 밝히 계시되었다.
참석자들은 일거에 다 알 수 없으나 '생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고 고백하였다.

그 중 부모를 따라 참석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고백의 일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학문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은 생명이라는 단어가 그리 놀랍고 달콤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말씀을 안보면 미칠 것 같은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조OO 자매).

5. 묵상 기도
아버지...
당신을 알지 못하던 자였습니다. 아들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으나 생명과 무관한 일을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 저들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생명 아닙니까?
그런데 아담 안에 죽은 존재를 치유시키고 변화시키고 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것도 말씀을 도용해서 말입니다. 주여, 알고 보니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심판하신 당신의 공의를 찬양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저들도 심판에 이르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심판 중에 긍휼을 베푸시고 아들의 생명을 주셨나이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생명의 부활을 바라보는 자 되었습니다.
내게 행하신 일을 찬양하며 증거하나이다.

아버지...
이번 47기 캠프에 참석한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들에게 생명이 계시되었으니 날마다 누리게 하소서.
생명의 교제로 들어가 더욱 풍성히 누리고 전하게 하소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생명이 전해지게 하소서.
결국 심판에 이르게 하는 수많은 사역들을 폐하소서.
오, 주여 이 땅에 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생명으로 살리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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